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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폭력이다 - 평화와 비폭력에 관한 성찰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조윤정 옮김 / 달팽이 / 2008년 7월
평점 :
국가라는 대상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것은 군대에 가서였다. 비무장지대에서 니콘 쌍안경으로 북한군의 표정까지 바라보며 생활했다. 이십대 중반의 나이에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를 생각하며 군대의 조직과 남북 관계, 힘의 논리와 참담한 근현대사에 대해 또 다른 시각으로 고민했다. 수많은 책 속에서도 답을 구하기는 힘들었고 작계 5027도 정답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거대한 폭력 조직의 말단 조직원으로 참여한 기분은 참담했다. 이후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우리 사회의 비극으로 보인다. 당연한 인간의 권리가 이제야 논란거리가 된다는 것은 친일파의 청산 문제보다 심각했다. 그들이 사회의 요직을 그대로 승계하고 해방 이후 극단적인 이념 대립으로 레드 콤플렉스를 조장하며 기득권을 유지해 오고 있는 현실은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라. 경찰 국가, 병영 사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대한 민국은 군대라는 말은 과장이나 허풍이 아니다. 언제쯤 세대가 교체되며 억압과 폭력과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학교에서 재생산되는 계급과 순종적이고 억압적인 지배 이데올로기는 고스란히 다음 세대에 전수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폭력 집단은 영원할 수 있을까? 다소 과격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피카소가 살아생전 공산당원이었음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헬렌 켈러는 삼중고를 이겨낸 철인이 아니라 사회 운동의 선봉에 섰던 여성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페르 톨스토이가 비폭력적 아나키스트였으며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굳은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지금 우리가 <국가는 폭력이다>는 톨스토이의 외침에 귀기울여하는 것은 올봄 광화문을 뒤덮었던 촛불시위 때문이 아니다.
국가는 집중되고 조직된 형태의 폭력을 대변한다. - 마하트마 간디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과 사상은 후대 인류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마하트마 간디는 톨스토이의 평화와 비폭력에 대한 신념을 온몸으로 실천한다. 영국의 식민지배에 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된 비폭력 무저항 운동이었지만 톨스토이의 외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왜냐하면 지금도 여전히 국가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보이지 않는 폭력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거두는 세금과 그것이 사용되는 방법과 그 방법을 결정하는 과정을 보면, 군대가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어떤 존재였으며 어떤 역할을 했는지 뒤돌아보면 톨스토이의 주장이 헛된 망상이 아님을 알게 된다. 100여 년이 지났지만 19세기에 그의 생각은 21세기에도 달라지지 않았고 우리에게 많은 교훈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정부와 국가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많은 일들이 우리를 오히려 불행하게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굳이 외면한다. 공교육 기관인 학교에서부터 아니, 유치원에 다닐때부터 애국가를 배우고 태극기 그리는 법을 배우며 맹목적인 충성심과 국민의 의무를 가슴 깊이 새긴다. 공교육 기관인 학교에 입학하면 너무나 당연하게 국민의 권리보다는 의무를 가르치고 순종적이고 억압적인 습관에 길들여진다. 지시하는 대상과 그것에 순종하는 학생이 있고 졸업 후에는 명령하는 상관과 복종하는 병사가 있다. 사회인이 되어서도 몸에 밴 노예근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장유유서와 서열에 의한 위계질서는 피부처럼 편안하게 우리를 감싼다.
톨스토이는 이런 모든 국가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를 외친다. 세금도 내지 말고 정부기관에서 일하지 말아야 하며 군대에 가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철저하게 평화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비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소극적 저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와 정부에 협력하지 않음으로서 그 기능을 마비시키고 자연스럽게 국가와 정부를 없어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나키스트와 사회주의자를 비판한 것은 단순히 그들의 선전선동과 급진적인 폭력 때문이었다. 그것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국가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혼란스런 무정부주의가 아니라 기독교적 공동체를 꿈꾸었던 톨스토이의 신념이 여전히 실현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그가 주장했던 자족적 공동체, 상호 호혜적이고 이타적인 작은 농촌 공동체는 우리들 삶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기독교의 교리를 통해 우리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그리고 애국심과 정부, 아나키즘에 대해 톨스토이의 사상을 읽어낼 수 있다. 살인, 노예제, 사회주의, 기독교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일관되게 평화를 주장한다. 다가오는 혁명의 기운에 대해 말하는 마지막 장에서 우리는 톨스토이가 왜 여전히 우리 인류의 사상을 지배한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 변혁의 과정과 역사의 현장을 온몸으로 겪어내면서 그는 어떤 형태의 폭력도 거부했으며 ‘평화’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책머리에 하승우가 쓴 ‘우직한 바보, 국가를 거스르다’는 글은 최근에 그가 쓴 <군대가 없다면 나라가 망할까?>와 겹쳐지면서 다시 한 번 톨스토이의 사상을 일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세상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부정적이고 암울한 시선으로 바라보자는 이야기로 몰아가는 외눈박이들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힘들겠지만 건전한 비판정신과 역사적인 관점에서 길어올린 통찰력은 독자들에게 덤으로 주어진다.
과연 톨스토이는 왜 그렇게 평화와 비폭력에 관해 깊은 사색에 잠겼을까? 사람들은 왜 권력의 폭력에 순응해야만 하는가? 국가와 정부가 없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을까? 이런 종류의 고민들이 황당한 질문이 아니라 ‘국가에 저항하라’고 외치는 톨스토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고전은 시대를 넘어 명불허전이다. 인류에게 말할 수 없는 감동과 깊은 통찰력을 제공한 톨스토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일단, 국기에 대한 맹세부터 없애야 하지 않겠는가? 학교에서는 아직도 애국조회가 거행된다면서요? 오호! 통재라!
080916-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