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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 작은책 스타가 바라본 세상 ㅣ 철수와영희 강연집 모음 1
하종강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07년 9월
평점 :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의 하루 일과가 유럽 방송에 소개된 적이 있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일이> 종류의 프로그램이었단다. 아침 8시에 등교해서 밤 10시가 넘어 하교하는 한국의 고등학생을 신기한 동물처럼 바라보았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그 목적과 과정에 대해 우리는 고민하지 않는다. 1% 대통령에 이어 0.1% 교육감이 당선되어 교육은 경쟁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수월성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초등학생까지 지옥에 몰아 넣고 있다. 이제 곧 그 부작용과 휴유증이 나타날 것이다. 대한민국은 왜 기나긴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가.
<작은책> 12주년 기념 노동자 7, 8, 9월 대투쟁 20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여섯 개의 강좌를 책으로 묶어냈다.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는 강연 내용을 책으로 묶었기 때문에 가독성이 뛰어나고 이해가 쉽다. 주변 사람들에게 제발 꼭 한 번만 읽어달라고 애원하고 싶은 책이다. 이런 종류의 책은 한겨레신문사가 매년 봄 특강을 마련했다가 가을에 책으로 엮어내는 책이 시발점이 되었다. 그 전에도 비슷한 종류의 책이 있었겠지만 대중강연의 힘과 강사들의 열정을 고스란히 활자로 전할 수 있는 방법이어서 색다른 의미와 재미가 있다. 프레시안에서 <여럿이 함께>를 묶어냈고 이번에는 작은책에서 이 책을 엮었다.
박준성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해 되둘이되는 역사에 대해, 안건모는 세상을 바꾸는 글쓰기에 대해, 이임하는 이 땅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정탱니은 한미 FTA 10년, 건강보험이 없어진다는 내용으로, 홍세화는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저당잡힌 오늘에 대해, 하종강은 불평등에 저항은 본능이라는 내용으로 강연했다.
여섯 명의 강사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는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고 그들의 말과 생각은 고스란히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채찍과 부채감으로 다가온다. 정태인이나 홍세화, 하종강이 강연한 내용은 이제 지겨울 정도로 읽고 고민하고 생각한 내용들이지만 현실에서는 모두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것들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이런 종류의 강좌를 통해 확인하는 것은 두 부류의 사람들이다. 먼저 현실이 어떠한지, 내가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 내 삶과 생각과 행동은 왜 스스로를 배신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비겁하게 행동하지 않거나 개인적 이익을 위해 침묵하거나 20에 편입하기 위해 목숨 거는 사람들이 있다. 쉽게 분류하면 알고 사느냐 모르고 사느냐로 먼저 양분할 수 있다. 그 다음은 실천과 행동의 문제인데 현실적으로 그것은 대단히 복잡한 양상을 띤다. 홍세화의 말대로 노조 집회가 끝나고 꺼리낌없이 무노조 경영 삼성의 핸드폰을 구입하는 노동자들은 구체적으로 그들의 행동과 의식이 일치하지 않는다.
자기자신이 노동자이면서 노동자라는 말을 싫어하고 노조가 빨갱이 단체라고 생각하며 내 자식들은 노동자로 살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거나 노동자가 되지 않기 위해 공부하라고 다그치는 사람이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그렇지 않은가? 과연 우리는 자본가인가? 노동자인가? 비행기 조종사, 대학교수, 의사까지 노조를 결정하고 세상에 노동자 아닌 사람은 누구인가? 사회책의 3분이 1일 노동문제, 노사관계를 다루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는 빨갱이의 나라인가?
대학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도대체 마음 놓고 대학에 보낼 수 있는 대한민국의 중산층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이의 수천만 원 병원비 때문에 퇴원시켜 3일만에 죽어버린 아이의 부모는 누구인가? 심심찮게 뉴스에 등장하는 우리 이웃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무상교육, 무료진료가 불가능한 꿈이며 빨갱이들이 외치는 구호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생각은 누가 만들어 주었을까? 대학을 공짜로 다니는 프랑스, 병원비가 무료인 스페인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는 사회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인지 생각해 본적이 없다면 이책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우리는 모두 의식화될 필요가 있으며 탈의식화할 의무가 있다. 2008년의 대한민국은 정상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 모든 사람이 노력하는 사회가 아니다. 누가 죽든, 나와 내 가족만 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아무 상관없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에게 기꺼이 박수를 보내겠다. 내 자식만이 아니라 남의 집 자식과 다함께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라는 학부모가 있다면 고개 숙여 절하고 싶다. 엄친아의 망령은 아이들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다. 미래는 암울하고 현실은 우울하다. 부정적 세계인식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는 것은 아니지만 이대로는 절대 안 된다.
수없이 읽었고 거의가 중복되는 내용이지만 정태인의 글을 넘어 홍세화와 하종강의 강연을 읽다가 토요일 밤에 눈물이 맺혔다. 나는 슬픈 소설이 아니라 이런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세 살 남동생과 다섯 살 누가를 반지하방에 열쇠로 잠가놓고 밥상을 차려 놓고 일을 나간 엄마의 가슴은 어떠했을까? 불이나 동생은 이불에 코를 박고 누나는 바닥에 누워 질실해 죽었다. 가난은 대물림되고 교육은 사회적 계층 구조를 강화한다. 세습되는 계급사회 이것은 전근대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대한민국은 전근대를 지향하고 있다. 그것도 빛의 속도로 말이다. 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막막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고, 침침한 눈으로 TV를 켜니 마침 <그것이 알고 싶다>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국제중 거쳐 특목고로 - 엄마들의 전쟁’. 방금 읽은 홍세화의 강연 내용을 영상물로 제작한 것 같다. 교육당국의 대책을 요구하는 마지막 멘트가 허탈하다. 도대체 교육당국이 누구인가? 국제정과 특목고가 늘어나면 학생들이 얼마나 똑똑해지고 실력이 향상되는가? 누가 행복해지고 누구에게 도움이 되며 누구에게 혜택이 돌아가는가? 누가 절망하고 상대적 박탈감에 좌절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사교육비 가계부담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그들은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이 대한민국의 시스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이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을까? 누가 그 일을 할 것이며 그 누군가가 바로 우리, 나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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