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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 ㅣ 라면 교양 2
하승우 지음 / 뜨인돌 / 2008년 8월
평점 :
‘어떻게 보느냐’가 ‘어떤 세상인가’를 결정한다.
책 표지를 넘기니 선명한 파란 색지에 검은 글씨로 한 줄 인쇄되어 있는 문장이다. 이쯤되면 제목과의 조합 속에서 어떤 관점으로 무슨 내용을 말하고 싶은지는 읽어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청소년을 위한 ‘라면교양’이라는 재밌는 이름의 시리즈 중 하나이다. 1권이 <미국이 세계 최강이 아니라면?>이다. 단순한 가정법을 위한 문장이 아니다. 뒤집어 생각하고 관점을 달리하면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는 뜻일 게다.
같은 하늘 아래 동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이 시대에 대한 해석과 분석은 제각각이며 대한민국을 규정하는 방식도 다양하기만 하다. 무엇을 볼 것인가, 어떻게 볼 것인가, 왜 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 문제는 세상은 살만한 곳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 생각의 차이가 아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개인적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이성과 논리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굴러가지 않으며 역사는 그것을 반증하고 있다.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인류의 건망증은 지금 여기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읽어보지도 않은 권인숙의 <대한민국은 군대다>는 읽고 싶지도 않다. 권인숙을 알고 대한민국을 알고 군대를 알고 있다면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책은 별 볼일 없다는 말이 아니라, 공감하기 위해 읽는 책이다. 고개를 주억거려 주고 때때로 한숨을 쉬고 씁쓸한 미소를 지어주는 것이 전부다. 미처 생각하지 않은 새로움이나 특별한 정보는 거의 얻을 수 없다는 게 나의 개인적인 판단이다. 왜냐하면 나는 대한민국의 군인이었으므로.
청소년을 위해, 아니 더 정확히 말해 군대에 아직 가지 않은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일 수 있는 <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스펀지>에 나올만한 질문이다. 짐작한대로 답은 아니올시다. 저자 하승우는 책세상의 <희망의 사회 윤리 똘레랑스>로 만난 적이 있다. 탁월한 솜씨에 감탄한 기억 때문에 저자에 대한 믿음과 제목이 주는 유혹에 넘어가 주기로 했다.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과연 군대란 무엇인가? 우스개 소리로 술자리에서 회자되는 군대에서 축구 한 얘기는 단군신화보다 유명하다. 간혹 확대 재생산되며 신화가 되기도 하고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전설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풍자와 해학의 결정판이며 어떤 훌륭한 문학보다도 그로테스크하다. 웃어넘길 수 없는 군대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 차라리 공상 소설 시리즈를 읽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그것이 내 경험이든 타인의 간접 경험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런 군대가 우리에게 무엇인지 실질적이고 친밀하게 접근한다. 왜 군대에 가기 싫어하는지, 남자들의 진짜 속마음은 어떤지를 말하다가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열변을 토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라서 심드렁 할 정도이다.
이 책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 함께 흥분하지 않는 내용이다. ‘병역 거부’와 ‘병역기피’에 대한 사람들의 이중적 태도가 그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마음 속으로 모두 병역을 기피하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도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나타내며 심지어는 심한 비난을 퍼붓는다. 환장할 노릇이다. 나만 손해 볼 수 없다는 이기적 태도의 반영이거나 노예근성에 대한 다른 방식의 표현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그들이 병역을 거부하는 이유와 그것이 공시적, 통시적 관점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고 있다. 과연 우리는 그들을 비난해야 하는 걸까? 국적을 포기하고 돈을 처발라가며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병역을 기피하는 ‘그들’보다 양심적 거부자들이 더 나쁜(?) 사람들인가?
강한 군대가 평화를 지키고, 군복무는 시민의 절대적인 의무이며, 대체복무를 인정하면 군대가 약해지고, 먼저 총을 내리는 건 바보짓이라는 생각에 대한 오해 혹은 진실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땅의 예비역 혹은 미래의 군인들이여 이 책을 읽어보라. 아니 군대에 보낼 아들이 있거나 애인을 두었거나 형이나 오빠가 있는 사람은 한 번쯤 읽어보자. 그들의 눈물젖은 편지를 읽고 공감하고 위로하기 전에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상식이라고 믿고 있는 ‘군대’에 대해 다시 고민하자.
남북 분단 상황에서 군대가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생각만해도 끔찍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는 없는 것인가. 전쟁에 이기면 우리는 행복해지는 것인가. 국라라는 이름의 괴물을 짝사랑하게 세뇌시키는 ‘애국심’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평화의 길은 그렇게 멀고도 험난하기만 한가. 끝이 없는 질문 속에서 우리의 생각은 조금씩 자라고 세상은 조금 더 행복하게 변화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맺는말을 이렇게 시작한다.
세상을 직선으로만 바라보면 시선에 잡히지 않는 다른 부분들을 보지 못한다. 지구도 둥글고 세상도 둥글고 사람의 삶도 둥글어서 우리는 유연한 곡선의 시선을 가져야 사물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다. - P. 176
인식의 힘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과 알고 있지만 동의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모든 상식과 진실이라고 믿었던 그 모든 사실들이 과연 그러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순간 달라질 수 있다. 그때-거기가 아니라 지금-여기의 문제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우리들의 현실이다.
자, 여러분 대한민국 군대에 다녀오셨습니까? 다녀오신 분들과 함께 살고 계십니까? 혹은 군대에 가야하는 사람입니까? 애인이 군인이거나 친구에게 위문 편지를 쓰는 중이십니까? 약장수처럼 외쳐 봅니다. 현실을 움직이는 힘은 바로 여러분에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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