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상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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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이성에 눈 뜬 때가 초등학교 3, 4학년 쯤 될까? 긴 머리에 갸름한 얼굴, 웃을 때 초승달처럼 얇고 처지던 눈이 기억난다. 선영이였던가? 계몽사 세계 문학 전집을 읽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을까? <흰고래 모비 딕>, <플루타아크 영웅전>, <비밀의 화원>, <모히컨족의 최후> 등이 떠오른다. 처음 야구 글러브를 사서 품에 안고 잔 기억이 선명하고 축구화를 신고 그물망에 축구공을 차며 등교하던 모습도 생각난다.

  여러 가지 선택적 기억과 자기 암시에 의해 사람들은 저마다 같은 장소에서 다른 기억을 갖게 된다. 살아온 생을 모두 기억하는 사람은 없으며, 망각은 삶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인간이 모든 것을 기억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상이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 볼 시간이 누구에게나 오는 걸까? 그때 어떻게 살았는지 스스로 평가하는 것은 정당한가? 아니 정당성의 문제가 아니지만 객관적인 재구성 또한 불가능하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는 소설이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로아나 - 여왕의 신비한 불꽃 상, 하>는 자전적 소설이다. 아무리 감추어도 표현과 묘사 사진과 기억들이 완벽한 허구로 읽히지 않는다. 작가가 그것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독자인 나는 이 짧은 생을 돌아보았다. 노년에나 해야 하는 짓을 미리 해보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지 싶다. 심각한 반성과 지나친 자만이 아니라면 재미있는 놀이가 되겠다. 아니 어쩌면 사람들은 매순간 모든 공간에서 뒤를 돌아보는 지도 모르겠다. 과거에 대한 기억과 아쉬운 미련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고칠 수 없는 단 한 번 뿐인 연극 무대의 주인공으로 어떤 연기를 선보일 것인가?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주인공이 된다.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 또한 자기자신 단 한 사람인 경우가 있다. 지나간 드라마를 다시 보듯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일은 쓸쓸하기도 하고 때로는 따뜻하기도 하다.

1. 기억과 망각

과거를 잊기 위해서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복용하는 바보들이 있다는 게 놀랍다. 아,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걸 잊고 싶어, 하고 그들은 말한다. 하지만 나는 진실을 알고 있다. 망각이란 잔인한 것이다. 기억을 도와주는 마약은 없는 걸까? - P. 102

  주인공 얌보는 어느 날 사고로 모든 기억을 잊는다. 안개처럼 모호한 현실과 과거의 기억들이 혼재하지만 어떤 것도 분명한 것은 없다. 자신의 이름과 직업, 나이 그리고 아내와 딸, 손녀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고서적 전문가. 그의 시간 여행은 안개처럼 불투명하다. 친구와 가족,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이 노인은 누구인가?

  고향에서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하게 된다. 오래된 책과 사진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이야기들이 스스로를 재구성하게 한다. 실존적 고민에 빠진 이 노인에게 정답은 없다. 어쩌면 모든 기억들이 퍼즐처럼 어지럽고 교묘하게 짜맞춰진 그림처럼 혼란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먼지 구덩이에서 발견해 낸 만화와 그림책은 그대로 얌보가 살아온 유년이며 이탈리아의 과거이고 인류의 역사이다. 기억은 현실의 조각들 속에서 발견된다. 흔적은 빛바랜 사진처럼 흑백으로 저장되지 않는다. 다만 사라지거나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얌보에게 주어진 삶은 과거의 현재의 연결 고리를 잇는 것만으로도 벅차기만 하다. 아련한 기억과 켜켜이 쌓인 세월의 먼지 속에서 퍼 올리는 추억들은 우리들의 그것과 같은 방식으로 재현된다. 파편화된 현대인의 삶은 이제 더 이상 50년 된 다락방을 허락하지 않지만 인간의 기억을 뛰어넘는 사물들이 간직한 기억은 확고부동하기만 하다.

인간에게 기억은 임시방편의 해결책일 뿐이다. 인생은 물처럼 흐르고, 한 번 지나간 것은 다시 오지 않는다. 나는 기억이 없는 대신, 인생 초년의 경이를 처음부터 즐기고 있었다. - P. 364

2. 소년과 사랑

  검은 교복을 입은 릴라는 얌보의 첫사랑이다. 어둠 속에서도 변치 않는 한 줄기 빛과 같이 그녀에 대한 환상은 집요하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를 놓지 못하는 소년의 사랑. 그는 더 이상 노년의 얌보가 아니라 순수와 열정을 무기로 뜨거운 가슴을 식히지 못하는 소년이다. 안개처럼 사라진 그녀,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알게 된 그녀의 죽음은 허망한 인생보다 더욱 더 그를 절망에 빠뜨린다.

세상일을 나 몰라라 할 때면, 당신은 이렇게 말했죠. 역사란 피로 얼룩진 수수께끼이고, 세계란 하나의 오류라고 말이에요. - P. 121

  그것은 그녀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그녀를 기억했던 시간에 대한 절망이다. 과거와 현재를 잇지 못하는 망각에 대한 슬픔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가 스러지는 찰나이기도 하다. 얌보의 사랑은 우리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구체적인 개인의 기억은 보편성을 획득하고 일반적인 패턴으로 전용된다. 누구나 그런 사랑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소년은 소년이기 때문에 사랑은 사랑이기 때문에 서로 뜨겁게 껴안을 수 없다. 그것은 소년과 소녀의 사랑이 아니라 순수와 열정의 모순된 만남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그렇게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가 남겨진다. 다만 추억만이 가슴에 남아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리고 일렁이는 가슴에 돌을 던진다.

3. 죽음 혹은 그리움

  죽음의 순간은 내게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가끔 흥미진진하기만 하다. 그것은 생의 종착역에서 느껴야하는 두려움이라기보다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연민이다. 누구나 걷게 되는 피할 수 없는 길에 호기심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임사체험>이나 <죽음, 또 하나의 세계>에서 보여주는 사후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그 찰나에 대한 혹은 그것을 맞이하기 위한 과정을 즐길 수는 없을까? 죽음 앞에 모든 인간은 겸손해진다고 하는 데 이런 생각은 오만일까?

  얌보는 환상을 본다. 그것은 현실과 다른 세계에 대한 꿈과 희망이 아니라 스스로 재창조해 낸 세계에 대한 기억과 추억들이다. 과거의 증거들이고 자신의 역사로 만들어낸 시간들이다. 그 속에 릴라가 있다. 죽음을 맞이하는 얌보의 모습은 슬프지 않다. 다만 현실 속의 에코와 오버랩되는 상상만 하지 않는다면 이 소설은 그저 한 생에 대한 진실한 보고서이며 삶의 과정과 순간에 대한 기억이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된 모든 기억들을 쫓아낼 필요는 없다. 어떤 것이든 한 생애를 살아온 사람에게는 소중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것의 결과가 현재이므로. 오래된 미래를 확인하기 위한 얌보의 노력은 우리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노년 혹은 죽음에 대한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비슷한 패턴과 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특별한 죽음은 없다. 숭고함에 대해 논할 필요도 없다. 다만, 얌보의 말대로, 태양이 검게 변하는 순간까지 살아 있음을 확인할 뿐.

나는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건듯 불어오는 것을 느끼며, 올려다본다.
왜 태양이 검게 변하고 있지? - P.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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