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 이덕일의 시대에 도전한 사람들
이덕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을 나는 ‘신념’에서 찾는다. 먹이와 생존에 대한 본능이 해결된 이후의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목숨을 걸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어쩌면 다른 의미의 ‘행복’일 수도 있다. 조선 후기의 소론 강경파였던 아계 김일경은 경종을 독살했다고 믿은 영조에게 “시원하게 나를 죽이라”고 외쳤다.

  물론 그 결과는 참혹했다. 경종에게 충신이었으나 영조에게는 역적이 되어 그의 자식들마저 절멸됐다. 연좌제의 전통은 끔찍하기만 하다. 그것을 알면서도 “시원하게 나를 죽이라”고 외칠 수 있었던 한 인간의 고뇌 혹은 고집은 ‘신념’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리라. 가족의 입장에서 다르게 보일 수도 있으나 역사적 관점에서 그와 같은 행동과 입장들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단순히 그들이 불행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대에 도전했던 사람들은 한 두명이 아니지만 우리 역사에서 그들의 행적을 돌아보는 일은 현실을 돌아보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누구나 말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시대에 도전하는 맑은 정신과 피 끓는 외침을 듣기는 더욱 어렵다. 백가쟁명의 시대에는 오히려 사람들이 영웅을 기다린다. 파시즘은 일종의 마약처럼 사람들을 유혹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6%의 지지, 강남 3구의 지지를 딛고 우뚝 선 강남교육감을 모시고 살아가는 시대에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세상이 어떻게 변하기를 바라는 걸까?

  그래도 세상은 돌아간다. 당장 나의 이익과의 관계만을 계산하는 것이 시대정신인가? 교육에 의해 계급은 재생산되고 그 체제는 더욱 교묘하게 공고히 굳어진다.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내 삶에는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엉뚱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나름의 가치와 판단대로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시대는 그렇게 흘러왔고 그 시대에 도전한 사람들에 의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씩 변화하기도 했다. 혁명을 경험하지 못한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에게 혁명을 꿈꾸었거나 시대를 거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반면교사가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에게 익숙했던 역사이며 바로 오늘 다시 되돌리려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이덕일의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는 ‘시대에 도전하라’는 말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시대에 도전했던 사람들의 행적은 아프게 읽히고 반성적으로 돌아보아야 할 현실의 문제만 남긴다.

  주로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시대정신’에 저항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분야별로 묶은 이 책은 먼저 중국에 항거한 사람들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북벌을 주장하고 주자학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들 중 양명학자 정제두가 인상 깊었다. 발해를 우리 역사에 편입시킨 유득공도 눈에 띤다. 정치 체제나 종교적인 문제로 자신을 버렸던 사람들, 사회제도나 신분제도에 도전한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이 책은 역사적 지식의 편린들을 머릿속에서 끼워 맞춰야 하는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주장했던 시대적 진실들이 과연 역사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그것이 훗날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역사 서술의 방법과 관점에 대한 동의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저자도 가끔 우리의 역사 교과서를 언급, 인용하고 있다. 그것이 아니라고.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지식의 문제를 넘어 관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개인적 용기를 넘어 사회적 진실이 되었을 때 역사의 흐름에 작은 변화가 생기는 법이다.

  책은 끊임없이 얽히고 교통하며 조화를 이루고 간섭한다. 바로 이전의 책에서 보았던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마라’는 이 책 3부의 제목으로 쓰였다. 4부의 제목 ‘내가 가면 길이 된다’는 당연히 노신을 떠오르게 한다. 어떤 분야의 책이든 합종연횡 되어 지식의 네트워크가 형성될 수 있기를 바라지만 만만치는 않다. 하나의 연결고리가 아니라 거대한 덩어리로 떠다니기도 하고 기억의 저편으로 가물가물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너무 소략하여 에피소드나 일화의 형식으로만 전해지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이 책의 한계이기도 하다. 여러 사람을 소개하고 있어 두루 살펴보는 즐거움을 위해 하나는 희생할 수밖에 없는 일이겠지만 엮이고 묶이는 의도와 방법을 따라가며 읽는다면 이덕일의 책은 나름대로 계통과 흐름을 따라 갈 수 있어 편리하고 재미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080805-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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