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로 간다 - 세상의 변화를 읽는 디테일 코드
팔란티리 2020 지음 / 웅진윙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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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평소 티비를 보지 않는다고 하지만  평일 9시와 일요일 12시가 되면 티비를 켠다. MBC 9시 뉴스, 출발 비디오 여행 때문이다. 그런데 평일에는 이제 더 이상 뉴스를 안본다. 처음에는 답답했지만 이젠 견딜만하다. 1시간이 여유로워졌고 뉴스를 보며 받는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어 정신 건강이 좋아졌다. 조간 신문만으로 답답할 때가 있지만 굳이 네이버나 다음 뉴스를 기웃거리지 않고 오마이 뉴스 등 인터넷 매체도 기웃거리지 않은 지 한참 되었다. 그래도 살만하다.

  세상에 진실은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가 믿었던 모든 것들은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졌고 다가올 미래는 늘 불안하기만 하며 현실은 모래 위에 지은 성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그래도 환상이나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건 게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정작 자신은 90이 넘을 때까지 살다가 죽은 쇼펜하우어의 권유대로 자살을 선택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의 모습과 미래에 대한 호기심은 떨쳐버릴 수 없는 유혹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그에 대한 무수한 분석들이 난무하고 혜안을 가진 지식인이나 종교인에게 기대기도 한다. 때로는 앨빈 토플러와 같이 탁월한 미래학자에게 기대기도 하고 신내림을 받은 무속인을 찾기도 한다. 그러한 노력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NHN이 만든 오픈 네트워크형 연구조직 NORI(New Media Open Research Info-Net)의 쳇 프로젝트 그룹인 ‘팔란티리 2020’은 인터넷을 비롯한 매체환경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네트워크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의 삶의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 토론 연구 그룹의 성과물을 담아낸 <우리는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로 간다>는 개인의 정체성과 프라이버시, 지식의 변화상을 비롯해서 구너력과 경제활동, 놀이문화, 예술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변화를 조망하고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연구 그룹의 구성원들이 현직 교수라는 것은 이 책의 최대 단점으로 보였다. 학문적 관점이나 객관성을 확보하고 싶은 의도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현실 감각이 떨어지고 이론적 토대와 인과관계의 해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현실을 읽어내는 탁월한 감각과 시대를 앞서가는 능력을 검증 받을 수는 없지만 시도나 의도만큼의 성과를 읽어내기는 어려웠다.

  일곱 개의 키워드를 잡아 낸 일이나 그것을 풀어내는 발랄함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먼저 ‘나는 몇 개인가?’는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여기가 너희 집 안방이냐?’를 통해 프라이버시를, ‘네가 아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를 통해 지식의 개념을, ‘클릭의 경제학을 읽어라’에서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나는 논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게임과 현실의 관계를, ‘누구나 파워 게임의 승자가 될 수 있다’를 통해 현대 사회의 권력을, ‘당신도 앤디 워홀이 될 수 있다’에서는 현대예술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대 사회를 가로지르는 중요한 키워드를 통해 시대를 읽어내고 트렌드를 잡아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미래를 내다보는 돌’이란 뜻을 가지니 고대의 신석 이름에서 빌려온 ‘팔란티리’는 2020년을 내다보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이 욕망은 특별한 목적과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다. 물론 현재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려는 것은 당연한 준비이자 기득권자들의 여유로 여겨질 때도 있다. 10년 후에도 우리가 돈을 잘 벌 수 있을까? 어디가 돈 되는 곳일까? 상대방의 의도를 비하하자면 이쯤 되겠다. 사람들의 의식과 변화의 흐름을 읽어내는 일은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초석이 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NHN은 산학 협동의 이름으로 미래 사회의 아젠다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 의도가 순수하고 선한 것일지라도 결과까지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이 책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KT나 현대자동차와 맞먹는 10조원의 자산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네이버나 한게임 사용자들은 알지 못한다. 아니 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것은 없다. 다만 이렇게 비대해진 조직과 어마어마한 수익구조를 지닌 기업이라면 그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작고 사소한 힘이 큰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사회를 예감했다면 뉴스 편집과 정치적 스태스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좋다. 네트워크 환경은 빛의 속도로 변해 갈 것이고 누구든, 언제든, 어디서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이 펼쳐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 힘의 원천과 근원이 되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관심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인문人紋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기업의 철학과 역사 의식은 지속가능한 경영의 초석이 된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진리는 단순하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예민한 촉수를 뻗쳐야 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들이 지향해야 하는 것을 찾아내고 제시할 수 있을 정도의 기업을 사람들은 원하게 될 것이다. 녹색은 생명이며 희망이며 자연이고 환경이다.

  시뮬라시옹의 시대에 구현해내는 시뮬라크르들은 어쩌면 완벽한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끝없이 고민하며 미래를 구현해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과제이며 ‘팔란티리 2020’이 고민하는 주제가 될 것이다. ‘지금-여기’가 아니라 ‘내일-거기’를 알고 싶다면 과거와 현재를 통해 먼저 변화의 흐름을 읽어내기 보다 변화의 주체들에 대한 관심과 길 안내가 필요하다.

  앞서 질펀하게 흘려놓은 고민들은 개인이든 기업이든 시민단체든 정부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의 것들이다. 하지만 그것들의 해법은 제각각이고 바라보는 관점 또한 상이하다. 그것들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는 더더욱 난망스럽다. 어쨌든 한 기업의 시도와 노력은 일단 가상하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이러한 노력과 연구는 지속되어 마땅하고 그 결과물과 소통과정은 열린 체계로 지평을 넓혀가야 할 것이라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래야 식상한 표현이 ‘보다 더 나은 미래’가 펼쳐질 것이 아닌가?


080728-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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