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착해질 때
서정홍 지음 / 나라말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머리로 쓰는 글이 있고 가슴으로 쓰는 글이 있다. 차가운 이성과 냉철한 판단력, 비판적 관찰력은 나를 깨어나게 하고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다. 반면에 뜨거운 가슴과 열정으로 생에 대한 감각을 보여주는 글은 부드럽고 진한 감동을 준다. 영혼의 깊은 울림을 주는 글과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는 글 중 어느 것을 우위에 둘 수는 없다. 검의 양날처럼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정홍의 새 시집 <내가 가장 착해질 때>는 지금 창 밖에 후드득거리는 빗소리처럼 조용하고 차분하게 가슴을 적신다. 끝없는 관심과 애정어린 관찰을 통해 대상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생활’이 곧 시가 되는 감동을 경험한다. 농촌에서 몸소 겪은 일들을 들려주는 솜씨가 탁월하다. 농부가 되어 살아가는 시인의 모습은 피상적으로 낭만과 연결시킬 수 있겠지만 그에게는 생활이며 힘겨운 삶의 현장이다. 하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이웃을 보듬고 자연을 대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우리의 걱정은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수많은 시집을 읽어왔지만 정말 오랜만에 눈물이 날 뻔한 시들을 여럿 만난 시집이다. 먼 데 하늘을 바라보며 산다는 게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면 내겐 이미 아주 소중한 시집이 되어 버렸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진솔한 몸짓과 꾸밈없는 목소리에서 출발한다. 보태지도 덜어내지도 않고 인상적인 순간이나 찰나를 잡아내고 혹은 긴 호흡으로 타인의 생을 숙연하게 보여준다. 시는 그렇게 우리를 조금씩 젖게 만든다. 깊은 밤 어둠을 적시는 장마처럼.

기다리는 임은 오지 않고

봄비가 내리는데
외송 할머니가 비를 맞으며
정자나무 아래 혼자 서 있다.

“할머니, 누굴 기다리세요?”
“읍에 일 보러 나간 영감
하매나 올랑가* 하매나 올랑가
기다렸는데 아직도 안 오네.”
“할머니, 옷이 다 젖었어요.
감기 들면 어쩌시려고.”

눈치도 없이 비는 자꾸 내려
야윈 할머니 어깨 위에 뚝뚝 떨어지고
멀리 개 짖는 소리만 아득한데
하매나 올랑가 하매나 올랑가
기다리는 임은 오지 않고…….

* 하매나 올랑가 : 이제나저제나 오려나.

  그리움엔 나이가 없다. 읍내 나간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마음은 청춘의 그것과 다름없다. 생의 기억과 행복의 순간들은 늘 반복되고 온몸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삶에 충실한 사람들은 순수하며 거짓이 없다. 그래서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고개 숙이게 한다. 아무것도 아닌 순간들이, 장면들이 마치 거울처럼 우리를 되비친다.

사람이 그리운 날

여럿이 어울려
산밭에서 고구마 싹을 심다가도
여럿이 어울려
저녁밥 먹다가도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그리워 미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혹은 익숙한 곳에서 우리는 사람을 그리워한다. 어깨를 부대끼며 혼잡한 거리를 걷다가 느끼는 군중속의 고독이 차라리 행복할 지도 모르겠다. 산밭에서, 어울려 먹는 밥상에서 갑자기 사람이 그립다는 말은 무엇인가. 감당해 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겠다. 미치도록 누군가를 그리워해 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겠다.

아름다운 시절 3
- 외식하던날

  한 달에 한 번 우리 식구들 외식하는 날이었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미리 저녁밥을 먹이고 통닭집으로 데려갔다. 한 달에 한 번 닭고기 맛을 볼 수 있는 날, 한창 자랄 나이에 닭 한 마리씩 거뜬하게 먹어 치우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흐뭇할 텐데 왜 저녁밥을 먹이고 데려갔을까?

  아이들이 다 자란 이제야 알았다. 닭 한 마리 값이라도 아껴서, 가난한 셋방살이 퍼뜩 벗어나려고 저녁밥을 먹이고 외식했다는 것을. 그런데 스무 살이 지난 우리 아이들은, 지금도 빈속에 고기를 먹지 못한다. 어릴 적부터 밥을 먹고 나서 고기를 먹는 버릇이 들었기 때문이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세상인데, 왜 문득문득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일까.


  거시적인 안목으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비판하고 자본주의의 갈등을 분석하고 이데올로기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다가 이런 시를 만나면 맥이 탁 풀린다. 추상적 이론보다 삶이 구체성이 주는 감동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법이다. 밥을 먹이고 닭고기를 먹으러 가는 가족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이와 유사한 우리의 이웃들은 점점 늘어만 간다. 그들만의 리그는 더더욱 치열해지고 가슴만 따뜻한 이웃들은 그 이유도 모른 채 어떻게 이 현실을 바라보고 실천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조차 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래서 김수영의 말대로 우리는 왜 작은 것에만 분노하는지 스스로에게 반문하기도 한다.

이른 아침에

감자밭 일구느라
괭이질을 하는데
땅속에서 개구리 한 마리
툭 튀어나왔습니다.

날카로운 괭이 날에
한쪽 다리가 끊어진 채
나를 쳐다봅니다.

하던 일 멈추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루 내내
밥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물도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잠시 가슴이 뻐근했다. 도대체 어쩌자고 이런 사람이 있다는 말인지. 착한 사람을 보면 화가 난다. 그 마음의 언저리가 헤아려지기 때문에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감을 가진 착한 인간은 결국 자연에서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아는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착해질 때’를 이렇게 말한다.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이랑을 만들고

흙을 만지며

씨를 뿌릴 때

나는 저절로 착해진다.


  이랑을 만들고 흙을 만지고 씨를 뿌려 착해질 수 있다면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명령하고 싶다. 모두 나가 이 땅의 흙을 만져보고 씨를 뿌려 보라고. 타인의 배려와 나눔을 교실에서 배울 수 있을까? 온몸으로 감당해야 할 순간들을 책 속에서 만날 수 있을까? 우리가 안다고 하는, 배웠다고 하는 것은 결국 몸의 기억이며 습관이다. 그렇게 배워야 이런 시를 쓸 수 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
내가 이른 새벽부터 일하면
누군가 아무 걱정없이
편안하게 쉴 수 있기를.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
내가 사나흘 굶으면
누군가 아무 걱정 없이
배불리 먹을 수 있기를.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
내가 세상 걱정 때문에 잠 못 들면
누군가 아무 걱정 없이
깊은 사랑 나눌 수 있기를.


  자기 희생을 통해 타인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지극히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생각은 배울 수 없다. 스스로 깨닫거나 체험을 통해 알아가는 것이다. 나를 통해 너를 배우고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눈물처럼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을 시인이라고 불러야 한다. 머리고 쓰고 정제된 언어로 매끄럽게 표현된 시가 울림과 감동이 없는 이유는 바로 서정홍과 같이 온몸으로 쓰는 방법을 아직 모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 시인은 다섯줄 짜리 시작법을 시로 썼다.

  이렇게 명쾌하고 단순한 진리를 여러 권의 책으로 묶어낸 수많은 평론가와 시인들을 부끄럽게 한다. 재밌는 말장난이 아니라 시란 무엇인지 극명하게 드러낸 기막힌 구절이다. 서정홍은 이 시를 통해 그리고 앞서 인용한 시들을 통해 시의 본질을 말하고 있으며 그 진경이 무엇인지 소박하고 깨끗하게 펼쳐 보여준다.

  편안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읽기만 하면 되는 이 책을 통해 나는 또 다른 세상을 배웠다.

시인이란

시인이란
쉬운 걸
어렵게 쓰는 사람이 아니라
어려운 걸
쉽게 쓰는 사람이다.                                                   


080702-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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