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연인은 늘,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 한다”는 결여에 시달리는 법이다. 그 시달리는 방식은 은밀하고 집요하다. 수동과 능동의 정서가 변덕스럽게 교차하면서 양철판을 긁듯이 간지럽힌다. - P. 21

결여감은 곧 잉여감을 낳고, 잉여감은 다시 결여감을 불러들인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했던 사람을 동경하고, 사랑했던 사람은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동경한다. - P. 39

모욕과 상처의 기억은 단순히 기억이 아니라 여전한 폭력이다. 왜냐하면 상처의 기억은 곧 기억의 상처이기 때문이다. - P. 46

사랑은 운명적인 접슬接膝이 아니다. 사랑은 우연하게, 그리고 우연한 ‘사이’에서 자신의 알리바이를 찾아 나온다. 알리바이가 아닌 사랑, 칸트의 물자체Ding-an-sich 같은 사랑을 보았는가? - 85

물건들 사이의 인력이 아닌, 연인 사이의 그리움이 대칭적일 리 없고, 또 흔히 그리움이란 그 속성상 비대칭성에 의해서 그 빈도/강도가 높아지는 법이니, 그리움은 인력이긴 하되 바로 그 물매 효과에 의해서 생기는 경사의 템포 탓에 일종의 공포, 혹은 위기의식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P. 140

그리움도 만남을 연기하는 과정이요, 애무도 섹스를 연기하는 과정이요, 연애도 혼인을 연기하는 과정이요, 사랑도 그 완성을 연기하는 과정일 수 있을 터. 심지어, 과연 삶인들, 죽음을 연기하는 기술적 과정이 아닐런가? - P. 223

고백과 소문은 서로를 모른 체하면서도 실은 내연의 관계다. 우선 둘 다 반칙이며, 둘 다 전염병이기 때문이다. - P.250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의 화제畵題는, “달은 기울어 밤이 삼경인데, 두 사람의 마음은 오직 두 사람만이 안다”고 하였다. 그러나 삼경이든 오경이든, 두 사람의 마음을 두 사람조차 모른다는 사실 속에 사랑의 진실이 맥동脈動하는 법. 그 마음은 어느 먼 미래의 것이었고, 매번 여기가 아니라 저기에 속하였다. - P.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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