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케의 눈
금태섭 지음 / 궁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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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은 착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법이란 착한 사람에게는 필요 없다는 전제가 되는데 과연 그럴까?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일정한 규칙이 없이 생활하는 게 가능할까? 나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 인간 본성에 관한 철학자들의 일갈에 대해 살펴 볼 필요도 없이 세상은 지옥이 될 것이다. 성선설을 믿든 성악설을 믿든 백지설을 믿든 모든 인간은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욕망’이라는 것이 선천적이든 학습에 의한 후천적인 것이든 그 접점에서 갈등은 시작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눈을 가리고 있다. 왼손에는 천칭을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은 상징적이다. 불편부당한 법의 원칙을 강조하는 엄숙한 손짓은 믿음직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그 천칭이 균형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던 ‘無錢有罪 有錢無罪’의 원리는 디케의 칼보다 무서운 원칙으로 작용한다.

  돈과 권력의 유무와 상관없이 동일한 법 적용이 이루어지는 사회가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과 그 대상이 되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쉽게 답하지 못하 것이다. 현실과 이상은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세상을 이끌어 온 것인지도 모른다. 법은 법대로 현실은 현실대로 움직여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법적용의 원칙과 취지는 이상적이지만 현실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법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억울함과 부당함을 호소하는 많은 사람들과 그렇지 않다고 외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법은 언제나 진실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 주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아마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쉽게 타협하지 않으려 하지만 냉정한 현실과 마주할 때면 흔들리고 또 흔들린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법을 가장 큰 권력이라고 생각한다. 법을 집행하고 법을 다루는 사람이 되려는 노력은 부와 권력을 거머쥐는 것과 동일시한다. 그 행위의 숭고함과 냉정함에 대해 고려해 볼 여지도 없이 현실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한겨레 신문에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2006. 9. 11)이라는 기고문으로 화제가 되었던 금태섭 변호사의 <디케의 눈>은 법에 대한 고민들이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다. 피의자가 됐을 때 행동지침을 서울중앙지검 검사 신분으로 일간지에 실었으니 파장은 만만치 않았다. 지금은 변호사가 되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오히려 그 때의 시선과 용기가 훨씬 숭고하게 느껴진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해, 그 집단의 이익에 반하는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다. 내부 고발자는 아니더라도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 책은 영화 ‘라쇼몽’으로 출발한다. 개인적으로도 자주 인용하는 영화라서 일단 반가웠다. 디케의 눈을 속이기 위한 사람들의 치열한 거짓말 혹은 스스로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에 대한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법의 존재 의의는 바로 그 지점에서 탄생한다. 검사보로 일하던 시절의 사건을 통해 혹은 유전자 감식의 발달로 인해 진화해 왔다고 하지만 법의 심판은 지금도 여전히 진실의 발끝만 매만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진실을 찾는 것은 맨손으로 물을 움켜쥐려는 것처럼 어렵고 때로는 불가능하기까지 하다.”는 저자의 말은 순결한 고백처럼 느껴진다. 법으로 진실을 규명할 수 없다는 비관론이 아니라 법을 집행하고 혹은 법의 심판을 받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진지한 외침이다. 정의正義를 무엇이라고 정의定議할 수 있을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LA폭동이나 두순자 사건, 패리스 힐튼 사건은 흥미 있게 법과 현실 사이의 고민을 읽어낼 수 있게 한다. 특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란다 경고의 유래를 통해 과연 우리 사회의 법이 지향해야 할 곳은 어디인가 고민해 볼 만하다.

  미국와 우리는 역사와 문화가 다르다. 하지만 가끔 그들에게 배워야 할 혹은 부러운 구석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메리칸 드림도 맹목적인 반미도 우리에겐 필요없다. 냉정하게 판단하고 합리적으로 현실의 문제를 고쳐 나갈 만한 이해와 용기가 필요하다. 1년에 88건의 사건을 맡는 미국의 대법원과 그보다 200배가 넘는 사건을 판결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을 비교하는 것도 현실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고민의 한 자락을 펼쳐 놓는다.

  저자의 ‘법으로 세상읽기’는 실제 생활과 관련된 사건이나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법과 연결시켜 일반들도 ‘리걸 마인드 legal mind'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안다. 누구나 그것이 필요한 줄을 안다. 하지만 현실에서 누가 얼마나 법의 원칙을 따져가며 살며 많은 관심이 있는가. 억울하고 고통스런 순간에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하는 것이 법이기도 하고 자신의 억울함과 분노를 해결해 줄 대상으로 법을 찾기도 한다. 우리가 법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그것이 언제라도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의 편이라는 사실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세상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경없는 의사회’만 있는 것이 아니듯이. 금태섭 변호사의 <디케의 눈>은 사람들의 눈을 밝혀 주길 바라지만 폭넓은 시야와 실용적인 상식을 제공하기 보다는 ‘법’ 자체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담겨 있는 책이다.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법을 통해 세상과 사람을 읽어가고 있는 변호사의 진솔한 이야기로 읽힌다.

  즐거움과 정보를 함께 전해주며 고민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면 기꺼이 금태섭의 다음 책도 사 줄 용의가 있다. 완결된 구조를 지닌 잘 짜여진 책은 아니지만 현실에서 마주치는 문제들에 대해 혹은 유사한 상황들에 대해 한번 쯤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성찰의 기회가 되었다. 인권은 멀고 자본과 권력은 가깝다. 우리 사회가 조금 성숙했다고 느낄 수 있는 판결과 합의들이 계속 이루어지길 바랄 수밖에. 그래도 나는 법과 저만치 멀리 떨어져 살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을 해 본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080605-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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