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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도 눈부시다 - 선시가 있는 풍경
김영옥 지음 / 호미 / 2008년 5월
평점 :
삶의 다양한 풍경 속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은 많지 않다. 현실은 언제나 치열하고 경쟁적이며 옆을 돌아볼 틈조차 없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사이 없이 뛰고 또 뛰다가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고 한숨을 쉰다. 추적추적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전 생애를 뒤돌아보거나 막연한 미래를 걱정한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이 무어냐는 질문은 참 부질없다. 정답이 필요 없을 뿐더러 있다고 해도 모두가 그것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삶의 방법과 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가끔씩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어디로 가려는지 고개를 들고 조금 멀리 내다보고, 잠시 쉬어 뒤돌아보면 지금 여기가 보인다. 불가佛家에서는 인연因緣으로 관계를 풀어내지만 그 끝도 시작도 알 수 없는 세계는 범인의 세계와 거리가 멀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나는 때때로 산사를 찾는다. 물론 종교적 목적은 아니다. 고즈넉한 산속의 거처는 인간의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도道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지만 깨달음이 생의 목표가 아니라면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저 사는 동안 치열하게 앎과 삶의 과정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욕심을 버리는 일이 쉽진 않으나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는 조금씩 알 것 같은 나이가 되었나보다. 경쟁논리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끝없는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참선參禪만으로 깨달음을 얻거나 도道를 얻는 것은 아니다. 한 알의 모래 속에 우주가 들어있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인간은 한없는 자유를 느낄 것이다. <초승달도 눈부시다!>라고 느끼는 순간 세상은 밝고 환한 빛으로 가득하다. 김영옥은 그 풍경들을 담담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풀어 놓는다. 달빛 아래 조용히 흐르는 산사의 계곡 물소리처럼 시원하고 나지막하게 들리는 문장들은 담백한 차 한 잔과 어울린다.
꿈같고 환영 같은
육십칠 년 세월이여
흰 새 날아가고 물안개 걷히니
가을 물이 하늘에 닿았네
- 천동 정각, ‘임종게’
내 무덤, 푸르고
푸르러져
그 푸르름 속에 함몰되어
아득히 그 흔적조차 없어졌을 때,
그 때 비로소
개울들 늘 이쁜 물소리로 가득하고
길들 모두 명상의 침묵으로 가득하리니.
그 때 비로소
삶 속의 죽음의 길 혹은 죽음 속의 삶의 길
새로 하나 트이지 않겠는가.
- 최승자, ‘미망 혹은 비망 8’
소리 없는 창 밖에 내리는 빗소리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죽음은 명상과 침묵의 연장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 때쯤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그것조차 욕심이겠지만.
그 때 고요히 바람이 불었나니
맑고 가난한 솔씨 하나
홀로 바다로 날아가
바다에 깊게 뿌리를 내렸나니
- 정호승, ‘해인의 바다’중
옷 한 벌과 밥그릇 한 개로
산문을 자유로이 들고 나네
저 모든 산의 눈을 다 밟은 뒤에
이제는 돌아와 흰 구름 위에 누웠네
- 벽송 지엄, ‘의선 스님에게’
선시禪詩가 있는 풍경은 소리도 없다. 오규원의 시가 보여주는 언어의 진경처럼 맑고 투명하다. 빛도 색도 없는 물과 같다. 저자는 지하수처럼 시원하고 맑고 깨끗한 선시禪詩와 함께 산중의 모습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수행과정이 결코 만만하거나 즐겁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을 통해 진리를 얻고자 하는 산사의 풍경이 숙연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산길이 산을 내려와 문득
뒤돌아보면 따라 내려오는
저문 산, 물을 건너면
먼저 건너가 뒤돌아보는 저문 산
- 장석남, ‘산길이 산을 내려와’중
파란 바람아 불어오니라 불어가니라
알려고 하는 자에게만 비밀을 일러 주고
저 나뭇가지들을 흔들어 주어라
- 고형렬, ‘바람 나뭇잎’중
알려고 하는 자에게만 비밀을 알려주는 바람을 찾아 늘 길 떠날 준비를 하고 싶다. 끝없이 버리고 또 버리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싶다. 도道를 얻으려는 것조차 욕망이니 그것조차 내려놓고서. 아득한 지평선을 향해. 그렇게.
080601-0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