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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 지식인, 그들은 어디에 서 있나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엮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아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날의 기억은 영등포 여고 교지에 수필 형식의 글로 실렸으며 어딘가 책장 구석에 그 교지가 한 권쯤 남아 있을 것이다. 1987년 서울역 앞에서 전경 버스가 불타오르던 순간 나는 시내버스 안에서 멍하게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신문 1면에 실렸던 그 장면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시위에 참가했던 건 아니었고 글자 그대로 ‘세상 구경’을 위해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탔던 것이다. 말하자면 세상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노선이 길었던 그 버스는 혜화동을 출발해서 마포대교를 건넜다. 한강 둔치에서 평화롭게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 강변을 거닐던 사람들이 생각난 건 이글이글 타오르던 버스의 불꽃 속에서였다. 사회적 의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궁금증과 호기심에 가까웠다고 기억한다. 대학 신입생이었던 선배들이 가끔 들러 토요일 오후에 <철학의 기초이론>과 <철학에세이>를 던져 주고 돌아갔다. 하얀 한복을 입고 길가에 앉아 시위대를 향해 손수건을 흔들던 할머니 빌딩 창문마다 매달려 함께 소리치던 넥타이 부대, 길거리를 가득 메우고 구호를 외치던 사람들 - 내게 1987년은 사진처럼 선명하게, 혹은 단편적인 흑백사진으로 남아 있다.
수업 시간에 ‘노동의 새벽’을 읽어주셨던 선생님이 계셨고, 황지우와 김정환, 신경림, 김지하, 조태일의 시집을 뒤적이던 시절이었다. 뭐가 뭔지 세상은 뒤죽박죽이었고 첫사랑은 아득했으며 아무도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처럼 혼자 끙끙거리던 시절이 1987년이었다. 친구 녀석과 처음 음악다방엘 갔던 것도 아마 1987년이었지 싶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2007년에 후마니타스에서 출판된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은 단순한 책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개인적인 감회를 더해 우리 사회가 걸어온 길에 대한 분명한 뒤돌아보기 작업이다. 이 책은 경향신문사 특별취재팀이 이룬 값진 성과이며, 21세를 향한 디딤돌이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기 위한 거울이다. 누구에게나 권할 만한 책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읽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책이다.
한겨레만 쳐다보며 이렇게 훌륭한 기획과 이슈를 모르고 지나쳤을 아둔함에 발등을 찍는다. 참 아는 게 없고 단순하며 정보에 어둡고 뭐든 잘 까먹는 개인적인 버릇들이 때때로 원망스럽다. 그래도 이 책을 만나 며칠 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내용은 결코 행복하지 않지만 독자로 만난 이 책은 올 해 만난 책 중에 가장 값진 책 중의 하나가 될 듯하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말이 떠오릅니다. ‘세계를 개선시키려는 그대의 눈빛이 날 근심케 한다.’ 사회를 뜯어고치려는 그 열정이 우리를 불안케 하는 거죠. - P. 37페이지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고병권의 말은 역설적으로 이명박을 떠올리게 한다. 현실은 늘 비관적이었는지 모른다. 고병권의 말대로 만하임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방황하지만 객관적 인식이 가능한 ‘자유 부동하는 지식인’, 그람시의 전체를 바라보는 계급의 눈으로서 ‘유기적 지식인’, 사르트르의 통치 계급 이해에 복무하면서 지배계급의 유기적 지식인으로서의 ‘기능적인 지식인’으로 보는 것이 전통적인 지식인에 대한 정의였다. 하지만 이런 전통적인 의미에서 지식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
지식인들의 현실 인식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게 여겨진다. 우리 사회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이전에는 더욱 그러했다. 시대가 변했고 지식이 대중화 되면서 지식인의 역할과 위상도 달라졌다. 이영희 선생님과 같은 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만들어질 수 있는 사회적 상황도 아니지만 그것을 단지 시대의 변화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지식인이 특정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볼 수도 없다.
어쨌든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지식인은 이 책의 49페이지에 정리된 ‘2007년 한국 지식인 이념 분포도’를 참고하면 된다. 매스미디어나 책을 통해 자주 접했던 낯익은 얼굴과 이름들이 이념 성향에 따라 분포되어 있어 공간적인 개념으로 시각화 되어 있다. 다소 낯설지만 잘 정리되어 있다. 은퇴했거나 작고한 사람이 제외되어 있고 나름의 한계가 있겠지만 일목요연하게 일괄할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된다.
한국 지식인의 풍경과 오늘날의 상황을 살펴보고 지식인의 위기에 대해 살펴본 후 정치, 경제, 문화 권력과 지식인의 관계를 점검하고, 시민운동과 정책지식과 지식인의 관계를 정리했다. 지식인 생산 공장이 되어 버린 미국과 학술진흥재단을 검토했으며 마지막으로 대중지성을 살펴보는 것으로 책을 마무리했다. ‘지식인의 죽음’을 넘어라는 좌담은 결론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 책은 ‘지식인’을 주제로 현재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이 탄생하는 과정의 문제점과 그들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어떤 식으로 다양한 권력 관계를 형성하는지 혹은 그 지식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으며 대중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꼼꼼이 따져보고 있다. 이것을 또 다시 몇몇 지식인에게 분석을 의뢰하는 아이러니는 어쩔 수 없는 한계(?) 볼 수 있다.
취재과정에서 부딪히고 고민했을 내용들이 고스란히 책에 드러난다. 그것을 읽어나가는 입장에서 얼마나 잘 소화하는지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이 책에서도 소개되지만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나 <전환시대의 논리> 등 한 권의 책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시대가 변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논리가 달라졌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시대정신’은 민주주의나 민중해방이 아니라 경쟁과 자본일지도 모르겠다. 지식인의 역할과 위상도 당연히 변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기댈만한 혹은 믿을 만한 지식인이 존재하지 않을까? 아무리 자유로운 소통과 대중지성의 시대와 왔다고 할지라도 ‘지식인’으로 불릴 만한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의 역할과 임무는 쉽게 말해질 수 없다. 그것은 우리들의 요구가 그들의 몫이다. 대중과 지식인은 이제 서로 믿을 수 없는 관계를 이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대중이며 누구나 지식인이 될 수 있는 시대를 점검하기 위해 이 책은 꼭 필요하다.
080526-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