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내게 말을 걸다 - 이욱연의 중국 문화기행
이욱연 지음 / 창비 / 200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겨  일본이 ‘가깝고도 먼 나라’로 표현된다면 중국은 멀고도 가까운 나라가 아닌가 싶다. 공간적인 거리만큼이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국가와 민족은 달랐지만 지근거리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국의 문화는 우리의 문화와 얼마나 큰 차이가 있으며 어떻게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가. 최근의 한류 열풍으로 중국에 한국의 연예인이나 영화, 드라마가 붐을 이루고 있다고 하지만 문화는 그렇게 쉽게 전파되거나 흡수되지 않는다. 우리의 변화만큼 중국도 달라졌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받아들인 90년대 이후의 중국은 오히려 한국과 점점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욱연의 <중국이 내게 말을 걸다>는 중국 기행문이다. 그러니까 중국이 내게 말을 건 것이 아니라 저자가 끊임없이 중국에게 말을 걸고 있다. 각 성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에 마주쳤던 음식과 공간을 중심으로 꾸며진 책이다. 여행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문화’라는 코드로 중국과 접속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영화’를 전제로 한다. 말하자면 영화를 통해서 바라본 중국과 현실 속의 중국을 비교 체험하는 기행문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뻬이징, 상하이, 홍콩, 충칭, 톈진, 시안, 꽝저우, 항저우, 샨뚱, 허뻬이, 난징, 후난으로 이어지는 멀고 먼 여행길에서 저자가 만난 것은 중국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이다. 단순히 오래된 역사를 전제로 현재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또 하나의 편견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과거를 모르고 현재를 알 수는 없는 법이다. 지나온 세월과 그들의 풍습은 여전히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 가는 토대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광활한 면적에 넓게 분포된 만큼 지역적 특성이 강하고 언어마저 다를 정도로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니 여행객의 입장에서는 중국을 쉽게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겠다. 토양이 다르니 음식도 다르고 지역색이 강하다. 단순화시키거나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 책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은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 혹은 중국을 여행하고 싶은 사람 모두에게 읽을 만하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중국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가 아주 깊다. 외부자의 시선으로 동경하거나 경외감을 바라보지도 않고 호기심과 색다른 문화 체험 수준의 이야기도 아니다. 먼저 하나의 도시를 소개하며 음식과 특징을 보여준다. 그리고 한 두 편의 영화에 깃든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물론 방문의 목적과 글은 영화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붉은 수수밭’의 배경인 샨뚱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패왕별희’를 앞세워 뻬이징을 찾아가는 방식이나 영화를 안 본 사람은 부분적으로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소회나 타향에서의 감회를 감상적으로 적어간 기행문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정보의 습득 차원에서 혹은 영화에 깊은 이해를 위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북경 자전거, 색․계, 중경삼림, 첨밀밀, 스틸라이프, 영웅, 황비홍, 청사, 부용진 은 기억 속에 아련하거나 최근에 재밌게 봤던 영화들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감회가 새로웠다. 중경삼림의 ‘캘리포니아 드림’이 들리기도 하고 진시황의 10보 앞으로 다가간 이연걸이 떠오르기도 했다. 영화가 만들어진 본고장을 둘러보는 형식의 글들이지만 단정하고 사색적인 문장들이 결코 지루하거나 따분하지 않다. 맹목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기본적인 애정을 숨기지는 않는다. 중국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지만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

  가장 대중적인 장르인 영화를 깊이 읽는 것은 한 국가와 민족을 이해하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적당히 가볍게 무겁지 않고 경쾌하게 읽어나갈 수 있어 좋다. 영화와 음식과 그들의 생활과 현재가 결합되어 하나의 ‘문화 기행’으로서 손색이 없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중국을 여행하기 전에 혹은 영화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읽기에 적절한 책이다.

  루쉰의 소설을 인용하거나 적당한 크기의 사진들이 삽입되어 상상력을 자극하고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르도록 배려한 구성도 간결하고 깔끔하다. 중국 영화를 좋아하거나 중국 여행을 앞둔 사람에게 선물해도 좋을 만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내다볼 때 우리 입장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나라가 중국과 일본이다. 세계사의 흐름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들을 이해하는 일은 오늘의 우리를 이해하기 위한 객관적 조건이기도 하다. 그들과 우리는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분강개와 절치부심만이 과거사를 정리하는 옳은 방법이 아니라면 좀 더 깊고 넓게 그들을 이해해야 하겠다.


080508-053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ophung 2008-05-09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경삼림이라면... 마마스앤파파스의 캘리포니아드림을 갖다가 착각하신게 아닐지 싶으면서...

sceptic 2008-05-09 22:30   좋아요 0 | URL
허거덕이네요...맞습니다. 시카고의 호텔 캘리포니아가 아니라 마마스앤파파스의 캘리포니아드림입니다. 감사합니다.

sophung 2008-05-10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카고라니요... 아 자꾸... 이글스잖아요 아놔..

sceptic 2008-05-10 22:48   좋아요 0 | URL
-_-...1994년 공연 실황 DVD 다시 한 번 돌려봤습니다. <메멘토 모리>도 다시 볼까 생각중입니다...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 나이의 문제인것 같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