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가문의 쓴소리 - 이덕무 <사소절(士小節)>, 이 시대에 되살려야 할 선비의 작은 예절
조성기 지음 / 김영사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나는 무엇을 경계하며 살아갈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삼가는 걸까? 예절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질서의 다른 이름이다.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며 나를 절제하는 일은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조건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이기적이고 무례한 사람들은 점점 많아진다. 범위를 조금 넓혀 가족 이기주의가 예절과 삶의 토대를 형성하는 기본 틀로 작용한 것이 근대 이후라고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그것이 절대 가치가 되어 버렸다.

  예절은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법이다. 그 형식과 내용을 구별할 수는 없고 형식이 내용을 구속하기도 하지만 습관이 되고 그것이 행동을 변하시키고 인생을 살아가는 기준이 되려면 온몸으로 실천해야 한다. 특히 작은 예절을 지키지 않으면 타인은 물론이고 나를 온전하게 세울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내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라는 것을 선조들은 책 속에서가 아니라 실천적 삶을 통해 체득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 가르침에 귀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반성의 거울로 삼는다.

  영, 정조 대문장가인 박지원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사람이 이덕무이다. <사소절士小節>은 작은 예절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한 훌륭한 저서이다. 선비의 작은 예절이라는 뜻의 제목을 달고 있지만 선비의 가정에서 지켜야할 예절 모음집이다. 이 책을 소설가 조성기가 <양반 가문의 쓴소리>라는 제목으로 해설을 달았다. 말하자면 이 책은 조성기의 <사소절> 해설집이다. 그래서 몇 가지 장점과 몇 가지 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다.

  성품과 행실에 관한 교훈인 성행性行, 언어생활에 관한 교훈인 언어言語, 의복과 음식에 관한 충고인 복식服食, 행동거지에 관한 충고인 동지動止, 기타 삼가야 할 것들인 근신勤愼 편으로 나뉘어져 있고 하나하나 항목화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박지원의 <양반전>에서 양반의 법도와 권한을 듣고 “나, 양반 안해!”라고 외쳤던 사람의 심정을 헤아려 보자. 만약 그 사람이 이덕무의 <사소절>을 보았다면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까무라쳤을 지도 모르겠다. 선비로 살아가는 일은 겉으로 드러난 형식과 격식의 틀에 매여 살아야 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얼마나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을 엄격하게 다스리고 통제하며 삼가고 또 삼갔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덕무의 생애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가벼운 책이다. 스스로 그렇게 살았을 것이고 그것을 권면하는 책이니 이덕무의 입장에서 보면 일상생활에서 반드시 필요한 ‘실용서’를 쓴 셈이다.

  지금의 관점에서 읽다보면 오히려 웃음이 나고 재미있는 부분들도 많다. 특히 복식과 행동에 관한 충고들은 당시의 풍속과 일상을 상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성품과 행실, 언어생활에 관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방법과 태도가 조금씩 변했겠지만 그 근본정신과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는 고스란히 남아있다.

  ‘머리의 좋고 나쁨에 구애되지 말라, 뜻을 다하여 목표를 정하라, 정성을 기울여 날마다 부지런히 정진하라, 올바른 정신을 소유하도록 하라’는 것은 공부하는 기본자세에 대한 충고이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하는 기본자세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월급을 물으며 축하하지 말라는 충고나 음식이 차려지면 지체하지 말고 먹으라는 충고, 약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놀리지 말라는 충고, 근거 없는 말을 퍼뜨리지 말라는 충고 등은 현대인들도 뼈에 새겨 들을만한 충고이다.

  영조의 탕평책으로 규장각 검서관이 될 때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서출이라는 신분의 제약과 무관하게 책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아 스스로 ‘간서치’ 불렀던 이덕무. 방안에 들어온 햇빛을 좇아 책상을 들고 옮겨 다니며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는 고리타분한 서생 이덕무. 그가 말한 선비는 돈과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벼슬아치를 말한 게 아니었다.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예절들과 ‘선비’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과 행동거지에 대한 사소한 충고들이다.

  어찌보면 지루하고 쪼잔한 잔소리쟁이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에게 ‘선비정신’이라는 게 있다면 정신세계에 면면히 흐르는 거대 담론으로서의 사상이 아니라 이렇게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실천적 지식인으로, 생활인으로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이덕무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는 갔지만 그나 남겨 놓은 정갈하고 깨끗한 정신은 살아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자유와 제멋대로를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행동들을 돌아 보았다. 조선시대 냄새나는 생활규범이 아니라 오래된 미래가 보여주는 우리의 정갈한 생활 풍속을 오늘에 되살려 보는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느닷없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에서 유사한 내용들을 끌어다 붙이고 인용하는 저자의 종교적 색채만 아니라면 깔끔하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오래 곁에 두고 생각날 때 마다 조용히 읽어 볼 만하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사소한 법도가 시대가 흐른다고 해서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생긴 대로 살고 싶다. 내키는 대로 행동한다. 다른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난 나다. 편한 게 최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이 책을 피해 가야 한다. 숨통을 조이는 올가미로 여겨질 테니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한 번쯤 그 시절을 상상하며 이 시대와 비교하며 시간의 흐름을 확인하고 예절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는 책으로 가볍게 읽어볼 수 있겠다.


080429-05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