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 제1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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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의 본질은 소통과 전파에 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사람들에 의해 가감되기도 하고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쳐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집단 전체의 지혜가 고스란히 다음 세대로 전해지기도 한다. 구전문학은 그렇게 제 기능과 역할을 다하며 공동체의 무의식을 반영하기도 했고 교육의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야기가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다.

  구전 문학이 기록 문학으로 정착되고 집단 창작에서 개인 창작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야기는 글을 통해서 즉 책을 통해서만 유통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의 기능과 역할이 축소 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사회 시스템 전체가 자본의 논리에 의해 가동된다는 사실은 이야기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창조적이고 흥미 있는 이야기는 문화산업의 이름으로 소설로 창작되거나 영화, 게임의 스토리가 되기도 하며 거대한 부를 창출한다. 그러니 현대 사회에서 이야기는 돈이라는 명제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가 사라져 가는 시대에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일까? 그들을 위한 사색과 고민은 넘쳐나는 듯 하지만 정말 알맹이는 없다. ‘고교생이 읽어야할~’로 시작되는 시리즈나 ‘논술대비를 위한~’로 시작하는 수험생들의 불안감을 조장하는 자극적인 문구들은 일제강점기 근대 단편 소설이거나 유명 작가들의 대표작들 모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소년들 스스로 주체가 되어 고민하고 선택하고 방황하며 정체성을 찾아야하지만 그것을 다루고 있는 책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입제도에는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관심이 많지만 어떤 길을 가야할 것인지, 그들의 고민과 꿈은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은 아주 적다. 네모난 빵틀에 구워진 빵들처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시간에 등교해서 똑같은 책을 펴고 똑같은 공부를 하고 똑같은 꿈을 꾼다. 자본주의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썰매를 끄는 개처럼 헐떡이며 무한질주의 고통스런 생활이 오늘도 이어진다.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편견 같지만 큰 틀은 손대지 않고 그 안에서 그들은 사소한 즐거움과 어이없는 고민들을 할 때가 많다.

  아니 어쩌면 제도권 안에서 움직여지고 경쟁의 대열에 서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들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김려령이 그려낸 <완득이>처럼 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점점 남의 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다운 이 소설은 청소년들에게 읽힐 만하다. 고민의 폭이 깊고 진지하며 대상이 뚜렷하고 폭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난장이 아버지와 외국인 어머니를 둔 완득이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 어머니조차 얼굴도 모른 채 살아왔다. 고등학생으로 설정된 완득이는 말하자면 사회의 소수자다. 어른의 몸과 아이의 지능을 가진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삼촌과 아버지는 춤을 추며 생계를 꾸려가기도 하고 장터에서 물건을 팔기도 하며 지하철에서 구두 깔창을 팔다가 쫓겨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완득이가 살고 있는 옥탑방 건너편엔 담임 똥주가 산다. 소설의 첫 장면은 교회에서 완득이가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일주일 안에 담임을 죽여달라는 기도이다.

  시종일관 담임 똥주와 완득이의 관계는 유쾌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똥주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교사의 말투와 행동은 아니다. 욕도 잘하고 지독한 반어와 역설로 학생들을 비꼬기도 하며 끊임없이 완득이를 괴롭게 한다. 그 괴롭힘은 물론 완득이의 입장에서다. 두 옥탑방을 중심으로 완득이와 똥주가 만들어내는 인간적인 관계가 이 소설의 중심 축이다.

  완득이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삼촌은 완득이의 배경이다. 같은 반 여학생 정윤하는 완득이와 다른 모범생이며 공부도 일등이다. 윤하를 완득이 옆에 세우는 작가의 의도가 눈에 띠게 노골적이고 담임 똥주에게 부자 아버지가 있기 때문에 가난은 장식에 불과하다는 설정이 다소 작위적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고민의 폭은 완득이의 불우한 환경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인 거시적 관점으로 확대된다. 이주 노동자 문제와 소수자에 대한 편견, 입시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학교 교육의 현실, 기성세대의 편견 등 다양한 관점들이 서로 얽혀 있지만 청소년들이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도록 경쾌하고 발랄한 문장과 표현이 유지된다는 것이 이 소설의 장점이다.

  킥복싱을 배우게 되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는 완득이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이기지 못한다. 싸움이라면 자신 있는 완득이에게 사각의 링은 또 다른 하나의 세계이다. 정해진 규칙과 룰이 엄존하는 현실의 축소판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극복해내는 과정이 완득이가 성장하는 과정일 것이고 이 사회에 편입되는 통과의례일 것이다.

  이 소설은 청소년 성장 소설이라는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일상에서 벗어나 있는 청소년에 대한 관심과 어쩌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느 학교에나 오늘도 맨 뒷자리에서 엎어져 자고 있는, 학교를 그만두고 담장 밖에서 길을 잃어버린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고 있는 소설이다. 다양한 관심과 그들의 고민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그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만만하거나 단순한 고민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지 않다. 성적과 대학만이 지상 과제일 때도 있겠지만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당연히 갖게 되는 성장통을 앓고 있으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고민으로 밤을 새우기도 한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그리움이나 사랑, 이별과 죽음, 삶의 이유와 방향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벌써 그 시절을 잊어버린 어른만의 생각일 뿐이다. <완득이>는 불과 얼마 전에 겪었던 우리들 유년의 기억을 되새기며 청소년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책이며 무엇보다도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위해 청소년들이 꼭 읽을 만한 소설이다.


080325-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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