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가는 비평가를 여름날 소 잔등에 달라붙는 파리에 비유했다. 소의 입장에서 보면 귀찮고 짜증나는 무익한 존재라는 뜻이다. 작가와 평론가의 관계는 적당한 긴장과 거리가 필요하다. 자신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독려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 비평이다. 한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공론의 장에 펼쳐진다. 어떤 의도로 왜 쓰였는지 오로지 작품으로만 말하는 것이 작가의 숙명이다. 평론가가 아닌 일반 독자의 평가는 그래서 더 두려운 법이다. 물론 전문적인 식견이 없거나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작가와 작품을 평가할 수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독자의 평가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믿을만한 출판사 중 하나인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이란 타이틀을 단 서유미의 소설 <쿨하게 한걸음>을 단숨에 읽었다. 이 작가는 작년에 ‘제5회 문학수첩 작가상’까지 받으며 주목받는 신인으로 떠올랐다.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소설은 고급한 장르가 아니다. 탄생부터 지금까지 그래왔고 그래서 역설적으로 더 애정과 관심을 갖게 되는 장르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당황스러웠다. 믿을만한 출판사의 책이기도 하거니와 거창한 타이틀까지 붙었으니 지나치게 기대를 한 것은 순전히 내 탓이다. 하지만 읽어나가면서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은 없습니다’라고 하면 안되나? 서른 셋이라는 나이를 모티브로 출발한 이 소설은 계속해서 서른 셋인 주인공과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서른 셋으로 끝을 낸다. 사실 소설이 특정 나이나 주인공, 혹은 소재나 이야기 측면에서 진부할 수도 있고 더듬거릴 수도 있다. 문제는 감동이다. 가슴으로 전해지는 느낌이 없다면 지적 호기심이나 자만감을 부풀릴 수 있을만큼 포만감을 안겨줘야하는 것은 아닐까? 나른한 일요일 오후에 할 일 없어 켜놓은 TV의 재방송 단막극 드라마같은 느낌이었다면 작가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것일까? 신산스런 고통의 산물인 작가의 작품을 무참하게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소설을 읽고 나면 입맛이 쓴게 아니라 화가 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애인과 헤어진 주인공 연수는 인수합병 절차를 거치는 회사에 사표를 던진다. 삼심대 싱글의 특권은 그것으로 끝이다. 다니던 대학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다가 공립도서관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대학 동기를 만난다. 오랜 친구들은 조연의 역할을 한다. 네버랜드의 피터 팬에서 웬디가 되어버린 선영과 뒤늦게 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민경과 공부는 못했지만 빼어난 미모로 부자와 결혼한 사촌 연재 등 서른이 아니라 서른 셋이라는 확실한 삼십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이다. 이십대 청춘의 저쪽에서 환멸스런 현실을 피할 수 없는 나이로 진입하는 서른 셋 친구들의 다양한 모습들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사춘기는 아련한 추억이지만 생의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주인공은 삶은 현실이다. 생에 대한 따뜻한 애정보다 답답한 현실을 견뎌야만 하는 친구들의 모습은 다분히 현실적이다. 영화에 관한 공부를 다시 시작하며 늙어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돌아보고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작가는 일정부분 성공을 거둔 듯하다. 무언가 기다리는 독자에게 작가는 끝까지 현재 상황과 여러 친구들의 삶을 통한 현실의 지겨움과 밥벌이의 고달픔과 뒤늦은 성장통을 이야기할 뿐이다. 그래서? 도대체 소설에서 무엇을 기대하느냐고? 그것은 가슴 시린 통증과 울림이거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슬픔이거나 미친듯이 킥킥거릴 수 있는 재미이거나 철학적 깨달음을 주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적어도 이 소설에 대한 나만의 느낌이라면 다행이겠다. 이제 문학상도 출판사도 믿을 수 없는 카라타니 고진의 말을 패러디 하자면 ‘소설의 종언’에 대해 이야기할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극단적인 비유겠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인간은 ‘이야기’ 없이 살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줄 것인가 고민하는 수많은 작가들을 바라보는 독자들의 기다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작가들이여 힘내시라. 여기 언제든 소설에 환장할 준비가 되어 있는 독자가 있으니 말이다. 이기적이지만 그래서 난 될 수 없는 작가보다 언제든 가능한 독자를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080310-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