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의 겉과 속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함성.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대학 신입생 시절을 돌이켜 보면 소주와 막걸리 그리고 ‘오월의 노래’보다 이 노래가 먼저 떠오른다. 국민이라는 말에 익숙한 나에게 민중의 이름을 알게 했던 노래였고 이후 민중은 대중이라는 중화된 이름으로 내게 인식된다. 한 단어의 개념을 알고 어휘를 각인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경험적으로 알게 되는 경우와 추상적이고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경우로 대별된다. 국민과 민중과 대중 사이에 어떤 거리감이나 명확한 개념상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경험적인 단어의 의미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엉뚱하게도 <대중문화의 겉과 속 1>의 제목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은 문화가 아니라 대중에 관한 것들이었다. ‘대량 생산·대량 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의 사람. 엘리트와 상대되는 개념으로, 수동적·감정적·비합리적인 특성을 가진다.’는 사전적 의미가 정확하진 않더라도 대중을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다. 대중mass은 한마디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말한다. 특정한 이슈에 대해 의견을 가진 공중public과는 구별된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 속에 널리 퍼진 문화 현상을 우리는 대중문화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것은 다양한 시각과 관점에서 접근 가능하지만 대표적으로 미디어에 의한 문화 현상을 다룬 것이 강준만의 <대중문화의 겉과 속 1>이다.

  TV와 광고, 활자매체와 테크놀로지를 중심으로 대중문화 현상들을 소개한 이 책은 벌써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읽으면서 대중문화의 속성상 시의성이 떨어져 지나간 시대를 돌아보는 느낌이었다. 예상 독자를 청소년으로 상정했기 때문에 책장은 신문이나 잡지처럼 스스륵 넘어가고 내용은 분석적이고 비판적이지만 어렵지 않게 설명되어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그리고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은 흥미로운 작업이다.

  예를 들어 추억이 되어버린 스포츠 신문 기사와 관련된 분석을 보자. 지금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실시간으로 스캔들이 알려지고 댓글을 통해 대중의 반응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프로야구 시즌이 끝나고 스토브리그가 시작되면 스포츠 신문은 연예인들의 스캔들로 먹고 살아야했다. 대중문화는 그 대상과 주체가 수동적이며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실체가 모호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기체와 유사하다.

  강준만은 청소년과 대중문화를 시작으로 그 용어도 아련한 신세대와 X세대의 특징을 짚어내고 스타와 청소년과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것은 시대와 상관없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분석이다. 오빠부대로 대표되는 청소년과 연예인의 관계는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왜 스타에 열광하는가? 또 스타란 무엇인가? 이것이 경제에 미치는 효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는 사실들은 우리는 애써 외면하거나 쉽게 포기해버린다.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이 책은 대중문화의 표면적 현상들에 감추어진 이면적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다. 현상에 나타난 본질을 이해하는 일은 어떤 사물과 대상을 인식하기 위한 기초적인 단계이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맹목적인 믿음과 가르침에 길들여진 청소년들을 위한 책으로 손색이 없다. 청소년들에게는 세상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텍스트이다. 읽어야 할 것들은 너무 많고 그 독법을 제시하는 책은 거의 없다. 논술 광풍에 휩쓸려 모든 책 앞에는 논술 대비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기 일쑤다. 이제 정시 논술을 보지 않는 대학들이 늘어가고 있으니 어떤 방법을 쓸지 궁금하기도 하다.

  읽을만한 책과 추천할 만한 책은 개인적 성향과 목적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독서 멘토 역할을 하는 것은 그만큼 쉽지 않다. 나의 입장과 그것을 읽어야할 사람의 입장이 다르고 배경지식과 상황과 목적도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책은 추천할 만한 책이다. 어렵지 않으니 책을 좋아하지 않는 청소년도 쉽게 읽을 수 있고, 내용 또한 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주변의 문화 현상들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생각의 힘을 길러주기 위한 좋은 재료가 될 만하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변하면서 인용된 사건과 매체의 역할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대중문화를 움직이는 기본적인 시스템과 대중들의 반응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측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현상 속에 감추어진 이면의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수레바퀴와 작은 톱니바퀴들로 맞물려 돌아가는 듯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시스템 오류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시스템에서 한 순간도 자유로울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작다. 본질을 통찰할 수 있는 인식의 힘을 키워나가는 연습은 바로 지금 시작해야 한다.


080309-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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