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 창비시선 284
신경림 지음 / 창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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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은 흐른다. 한 순간도 머물지 않고 모든 순간을 과거로 만들어버리는 시간 앞에 인간은 무력하다. 어떤 사람도 결국 죽을 것이라는 대전제만이 진실인 것 같다. 소년이었을 때 만났던 시인의 새 시집을 열다가 깜짝 놀랐다. 1935년생인 신경림 시인의 나이 때문이었다. 이제 70이 넘은 시인의 눈을 빌어 세상을 바라본다. 그가 살아온 생애와 쌓여온 시간들 속에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박완서나 이청준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인생의 황혼녘에 접어 든 시인의 눈은 부드러운 통찰과 객관적 거리감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열정이나 분노, 흥분과 절망의 극단적 감수성은 좀체 찾아볼 수 없고 달관의 경지에 이른 듯한 깨달음과 통찰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삶은 이런 것이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하나의 장면이나 태도를 통해 짐작해 볼 뿐이다. 이영희 선생님이 80이 넘어 임헌영과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지적 활동의 종료를 선언했듯 작가들도 그런 때나 나이가 있을 것이다.

  마치 죽음을 예견하듯 신경림의 표제작은 그렇게 이별 노래를 듣는 것 같다. 별과 달과 해 그리고 모래밖에 본 적이 없는 낙타의 모습은 시의 오솔길만을 고집스럽게 걸어온 시인의 모습일 것이다. 지금까지 보여준 한국 현대시의 진경과 감동은 낙타처럼 타박타박 모래 사막을 걸어온 시인의 삶에 대한 당연한 결과물이다.

낙타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길음 시장 부근에서 살던 무렵 실제 경험을 노래했던 ‘가난한 사랑 노래’처럼 시인의 마지막까지 ‘가장 가엾은 사람’과 길동무가 되겠다고 한다. 낮은 곳에서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잃지 않았고 현실의 모순과 울분들을 정확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했던 모습은 여전하다. 삶의 길과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땅이 좋아 전국 요지의 땅을 골라 사들이는 장관 후보자도 있고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사명감이나 책임감이 아니라 그곳에 눈길이 도달하고 함께 고통을 나누려는 노력은 독자들에게 감동으로 전해졌다.

  조금 다른 모습으로 노래하고 있지만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시인의 관심은 여전히 모순된 현실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빛날 것이다. 이념 대립의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하지만 계층과 계급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자본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념보다 더욱 무서운 대상이 무엇인지 그 실체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미래를 예견하지 못한다면 더 큰 재앙이 닥칠 것이다.



내 몸이 이 세상에 머물기를 끝내는 날
나는 전속력으로 달려나갈 테다
나를 가두고 있던 내 몸으로부터
어둡고 갑갑한 감옥으로부터

나무에 붙어 잎이 되고
가지에 매달려 꽃이 되었다가
땅속으로 스며 물이 되고 공중에 솟아 바람이 될 테다
새가 되어 큰곰자리 전갈자리까지 날아올랐다가
허공에서 하얗게 은가루로 흩날릴 테다

나는 서러워하지 않을 테다 이 세상에서 내가 꾼 꿈이
지상에 한갓 눈물자국으로 남는다 해도
이윽고 그 꿈이 무엇이었는지
그때 가서 다 잊었다 해도


  소멸과 이별에 대한 시인의 목소리가 안타깝다. 눈은 사라진다. 눈과 비는 다르다. 형태와 물적 변화가 시각적으로 확인되는 눈으로 표현된 ‘나’의 인생은 순환론으로 이해한다. 물이 되고 바람이 되고 별이 되어 또 다시 은가루로 흩날려도 서러워하지 않는 다는 말은 생에 대한 자신감으로 보인다. 잘 살았다는 당당함이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존재론적 소멸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것은 서러움이 아니라 하나의 꿈일 뿐이다.

  <낙타>에서 시인은 다양한 내용을 선보인다. 자연에 대한 관찰과 감상, 여행에 대한 기록 등 시선이 닿는 곳마다 새로운 감각과 상념들이 정갈하게 표현된다. 낮은 목소리로 편안하게 토해내는 시편들이 결코 단순하거나 이완된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누구나 쉽게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식상함이라면 굳이 신경림의 시를 읽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숨어 있는 것들은 아름답다

숨어 있는 것들은 아름답다.
들리지 않아 아름답고 보이지 않아 아름답다.
소란스러운 장바닥에서도 아름답고,
한적한 산골 번잡한 도시에서도 아름답다.

보이지 않는 데서 힘을 더하고,
들리지 않는 데서 꿈을 보태면서, 그러나
드러나는 순간.

숨어 있는 것들은 아름다움을 잃는다.
처음 드러나 흉터는 더 흉해 보이고
비로소 보여 얼룩은 더 추해 보인다.
힘도 잃고 꿈도 잃는다.

숨어 있는 것들은 아름답다.
보이지 않는 데서 힘을 더하고
들리지 않는 데서 꿈을 보태면서,
숨어 있을 때만, 숨어 있는 것들은 아름답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관심, 숨어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시인의 능력은 아닐까?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재능 또한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함과 거대함에 감탄과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는 동안 시인은 부지런히 숨어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보아왔다. 그것이 신경림 시의 특징이다.

  이 시집에서는 ‘나는 왜 시를 쓰는가’라는 시인의 에세이가 해설을 대신하고 있다. 새삼스레 그의 시를 해설하고 비평하는 것보다 그의 육성을 통해 그가 살아온 생과 시의 길을 들여다보는 감동이 더욱 컸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늙은 시인들의 새 시집들을 조심스레 열어간다. 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경외의 마음으로 어쩌면 마지막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모든 것들에 감사한다. 신경림의 새 시집은 낙타처럼 그렇게 타박타박 우리들 가슴 속으로 걸어들어 온다.


08030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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