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천.천.히 그림 읽기
조이한.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3년 11월
평점 :
그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아무 서른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십대가 저물어 갈 무렵이었을 것이다. 진중권의 <미학 오딧세이>를 보면서 르네 마그리트와 에셔의 그림과 판화들을 만나게 되었다. 예술적 감수성과는 무관하게 그림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4차 교육과정 세대라는 핑계 아닌 핑계가 아니라 미술 실기 시험을 위해 조각도로 비누파기와 몸 비틀며 정물화 그리기 이외에는 도대체 학창 시절의 미술 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나의 둔감한 미학적 감성 탓이겠지만 어느 순간 그림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전시회에 가서 어슬렁거리거나 예술 관련 서적을 뒤적거리는 것 이외에 특별한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진에도 손이가고 미술사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라루스 출판사에 펴낸 <서양미술사Ⅰ~Ⅶ>가 기억에 남는다. 도판과 해설이 적절하지는 않다. 지나치게 문장이 어렵고 일반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들이 많다. 하지만 시대별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7권에 걸쳐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어 볼 만하다.
예술은 지식이 아니다. 조이한과 진중권의 <천천히 그림읽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읽어’준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무장정 그림을 보고 느끼라고 주문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다. 첫 번째 단계는 물론 관심이다. 관심없는 대상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림에 관심을 갖고 보고 싶은 혹은 읽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사람들에게는 추천할 만한 책이다.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본다. 두 가지 태도를 보이는데 우선 나처럼 문외한의 경우 머릿속의 지식과 잣대를 들이민다. 일명 확인사살이다. 내가 아는 게 맞는지, 책에서 읽은 혹은 주워 들은 것들을 좌판처럼 펼쳐 놓는다. 배경지식과 관계된 모든 것들을 점검한다. 그림을 보러 왔다고 하기보단 공부하러 온 느낌이다. 작년 덕수궁에서 전시된 합스부르크 왕가 컬렉션 <비엔나미술사박물관전>이 그랬다. 왕가의 족보를 꼼꼼히 들여다 보고 모델이 된 인물들의 관상을 보고 누군지 꼼꼼이 들여다 봤다. 초상화의 경우 그렇게 보는게 굳이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피곤했다. 미술관에 왔나? 공부하러 왔나?
두 번째 방법은 그냥 보는 거다. 그림을 읽는 게 아니라 보고 즐기는 마음으로 본다. <유럽 현대미술의 위대한 유산전>이 그랬다. 구상 작품 보다 추상의 경우가 더욱 그렇고 고전보다 현대 미술이 더욱 그렇다. 이 경우 그림은 놀이가 되고 관람은 가벼운 볼거리를 위한 산책이 된다. 잘못된 관람 태도라고 볼 수도 없고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두 가지 태도를 명확하게 구분하기도 어렵다.
사실 미술 작품에 대한 독자 혹은 관객들의 태도는 각양각색일 것이다. 소장하기 위한 극소수의 사람도 있고, 미술관에서 주마간산격으로 평생 한 번 진품을 대략 몇 십초 간 감상하는 데 그치는 경우도 있다. 미술사를 전공하거나 비평을 위한 감상자도 있을 것이다. 누구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보고 즐기는 독자의 입장이라면 그 의미를 해석하는 것 자체가 무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전 미술 작품의 경우는 얘기가 조금 다르다. 이 책은 미술관에 가기 전에 천천히 읽었으면 좋겠다 싶은 책이다.
도상학의 예비 단계와 묘사 단계를 거쳐 해석의 단계에 이르는 과정은 우리들 머릿속에 각인된 각 시대별 흐름과 특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입장에서 서양 문화의 전체를 조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신화와 종교, 정치와 사회, 사상과 학문 등 풍부한 배경지식과 상징, 알레고리를 모두 풀어내는 일은 전문가의 순준에서 요구되는 그림 독해법이다. 하지만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고전주의와 바로크 양식의 그림들은 색채와 구성 빛과 선이 주는 감동만으로는 그림을 제대로 읽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주문자에 의한 그림들은 화가를 장인 수준에 머물게 했고 표현과 창작을 시작한 진정한 의미의 예술로 탄생하기 까지 미술은 오랜 시간의 세월의 변화를 겪어왔다. 어느 예술 장르가 그렇지 않을까마는 미술 또한 앞선 시대의 극복과 시대 정신의 반영이라는 숙명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을 읽어내는 안목과 지식들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전체 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호학적 관점의 예술 분석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 6장 ‘그림에는 요란한 의미의 움직임이 있다’만 진중권이 집필했다. 나머지는 전부 조이한의 글이다. 공동저자가 당연하나 진중권의 이름을 끼워 책의 소비층에게 다가가려는 출판사 혹은 저자들의 의도가 아쉬움으로 남는다.
조이한의 글은 감각적이며 쉽고 편안하다. 본문 내용과 도판의 위치도 크게 어긋나지 않고 내용의 흐름에 따라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1,2장은 형식과 내용의 대비로, 3,4장은 개인의 심리와 사회의 대비로, 5,6장은 여성주의와 기호학의 관점으로, 7장은 현대미술에 할애하고 있다. 전체적인 구성이나 각 부분의 내용들이 적절하고 그림을 읽고 싶은 독자들을 위한 안내서로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림을 읽는 비법을 제공하는 책은 아니지만 처음 그림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함을 전해줄 수 있는 책이다. 그림이 재미없거나 무엇을 보아야 할 지 어떻게 보아야 할 지 망설이는 사람을 위해서도 좋은 안내서 역할을 할 수 있겠다. 호기심은 관심을 낳고 관심은 애정을 만든다. 애정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머리에서 가슴까지 훈훈한 기운을 불어 넣어 주기도 한다. 그것은 예술이든 사람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080225-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