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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지식채널 -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본의 모든 것
조양욱 지음, 김민하 그림 / 예담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가깝고도 먼 나라로 표현되는 일본은 우리와 특별한 관계에 있다. 지정학적으로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역사적으로 결코 가깝게 지낼 수 없는 나라가 일본이다. 국가 간의 교류나 외교가 개인 간의 관계처럼 감정적으로 처리될 수는 없지만 어떤 형태로든 과거사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근대화 초기에 식민지 시절을 경험한 우리 역사는 일본에 대한 객관적 거리와 시선이 불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식민지 사관의 논리나 민족 사관의 논리나 그것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의 논의를 떠나서 일본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21세기에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식민지에서 벗어난 지 불과 60년을 겨우 넘기고 있다. 일제의 잔재는 우리 생활과 문화 곳곳에 뿌리 깊게 배어 있다. 특히 언어처럼 사회성과 역사성을 동시에 지닌 경우 쉽게 바뀌지 않는다. 황대권의 <빠꾸와 오라이>처럼 일본어의 잔재를 굳이 찾아서 정리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일본어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용어들은 많이 있다. 뿐만 아니라, 라면이나 초밥 등 음식에서부터 닌텐도, 도요타에 이르기까지 우리들 일상에서 일본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조양욱의 <일본 지식 채널>은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 생활, 문화, 언어, 정치, 역사, 사회를 대표하는 핵심 키워드를 정리한 책이다. 하나의 키워드를 한 장의 사진과 함께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의 판단과 대상에 대한 인상이 간략하게 부연되고 있지만 주된 내용은 용어에 대한 설명이다. 이 책은 잡다한 박물지와 같다. 108 단어를 통해 일본이라는 나라를 상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잡다하고 일반적인 수준의 피상적인 상식에 불과한 내용들은 실망스럽다. 일본에 대해 알지 못하는 나 같은 독자에게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특정 분야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지도 없고 지나치게 많은 양의 정보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우선 제목을 살펴보자. ‘지식 채널’은 명백한 표절이다. 무임승차를 거두기 위한 제목 선정은 책 전체에 대한 인상을 구겨 버린다. 독특하고 참신한 책이 아니라 잘 팔리고 있는 책의 제목을 등에 업고 무임승차하겠다는 발상은 출판사나 저자의 입장에서 안전한 선택일 수 있지만 독자의 양미간에 주름을 잡아준다. ‘지식 채널’은 EBS에게 맡겨 놓았으면 좋을 뻔했다.
또한, 군데군데 저자의 보수성과 편견들에 눈살을 찌푸린다. 다음의 인용문을 보자.
일본에는 “마누라와 다다미는 새것일수록 좋다”는 속담이 있다. 새 마누라가 좋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다미는 볏집을 엮은 바닥 부분의 위에 골풀로 만든 거죽을 표면에 붙이는데, 새 다다미는 이 골풀의 향기가 신선하다. 일본인들은 새 다다미의 향기나 피부에 닿는 감촉에서 신선함을 느끼며 행복에 젖기도 한다. - P. 51
일본의 속담을 인용하고 있지만 여성에 대한 배려나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 자체가 의심스러워 어이가 없는 표현들이 군데군데 눈에 띤다.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일 수 있으나 ‘새 마누라가 좋은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는 저자의 말은 문맥상 웃음을 유발할 목적이 아니라면 심각한 수준이다. 문제는 단편적인 견해들이 일본 문화에 대한 적절한 평가나 객관적인 판단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일본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개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거나 특별한 안목과 관점이 없는 단순 설명은 지루한 박물지에 불과하다.
일본어를 우리말의 발음으로 적고 일본어를 병기하고 있는 각 장의 제목을 보자. 의미를 짐작할 수 있는 간략한 제목들이 붙어 있지만 그 어휘나 대상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는 장들이 많다. 그것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이나 설명을 읽어가면서 정확한 의미를 파악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쉽고 간단한 문장이기 때문에 가독성은 뛰어나지만 대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부족하고 그것에 대한 이면적이 이야기와 문화적 배경들을 설명하고 있지만 감동은 없다. 마켓 포지션은 잡학 사전 쯤 되겠지만 개인적으로 사서 읽고 싶은 생각은 없는 책이다.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본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피상적으로 혹은 간단하지만 재미있게 설명되어 있는 것도 있다. 정보 제공의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지만 아쉬운 면이 훨씬 많은 책이다. 목적에 따라 일본에 대한 잡다한 지식과 정보가 필요할 때 손쉽게 읽을 수 있을 만한 책이기는 할 것 같다.
080217-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