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오류 -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만드는
토머스 키다 지음, 박윤정 옮김 / 열음사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었습니다’라는 말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보다 이해하고 공감하며 나누고 사랑할 줄 아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더 어렵고 힘들다는 말이다. 즉, ‘머리와 가슴’은 ‘이성과 감성’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체의 한 부분으로 생각할 만큼 우리는 수 천 년 동안 마음이 가슴 속에 있다고 믿어왔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사랑이 가슴에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과학적 상식으로는 이성이든 감성이든 모두 머릿속에 있다. 이를테면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좌뇌에서 우뇌까지 가는 길이었습니다’ 정도가 맞는 말일 것이다.

  인간의 뇌에 관한 호기심은 의학 분야와 과학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초래했다. 뇌 과학은 이제 촬영장비와 기술의 발달로 상당한 연구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많은 학문 분야에 파급 효과를 미치고 있다. 의학은 물론 교육과 심리학에서도 이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어려운 문제들의 실마리가 풀려나가고 있다. 아직 미흡하지만 신경세포와 해마를 비롯한 각 영역별로 그 기능과 역할들을 하나씩 밝혀 나가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나 그 기관의 역할과 영역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은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의 신체 중에서 뇌는 가장 신비롭고 알 수 없는 영역이다. 마치 컴퓨터의 CPU에 비유되는 뇌에서 처리되는 정보와 판단에 따라 인간의 삶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열쇠는 모두 뇌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을 한다는 것은 뇌가 활성화되는 것이고 뉴런을 단위로 한 신경세포들의 활발한 상호작용이다. 그러한 생각들이 모여 주체와 객체를 판단하고 그것들의 관계를 규정한다. 우리의 정체성은 몸과 더불어 마음, 즉 우리의 뇌의 작용에 대한 타인의 평가이자 판단이다. 따라서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방법은 나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과 정보를 처리하고 판단하는 작용에 대한 경우의 수에 대한 조합들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하는 생각과 판단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이성에 기초하고 있을까? 아니면 설명되지 않는 감성과 살아오면서 쌓여온 수많은 편견과 잘못된 경험들에 의해 결정되고 있을까? 토머스 키다의 <생각의 오류>는 이런 질문에 대한 1차적으로 객관적인 답변을 제시해 준다. 이 책이 말하는 기준은 단 하나, 바로 ‘과학적 합리성’이다. 여기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사고하고 판단하면 일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생각의 오류’들을 줄일 수 있다는 충고이다. 저자는 이 세상이 얼마나 잘못된 믿음과 결정으로 가득차  있는지 실제 사례를 통해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인간의 사고 형성과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연구를 지속해 온 토마스 키다의 <생각의 오류>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전해준다. 저자는 우선 머리말에서 여섯 꾸러미를 제시한다. 이 질문들에 대답해보자. ‘통계수치보다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확인하고 싶어한다. 삶에서 운과 우연의 일치가 하는 역할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잘못된 기억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항목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꼼꼼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일 수도 있고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무엇이 나의 생각에 잘못된 영향을 미치는지 항상 합리적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지금까지 주가가 떨어진 종목을 골라 투자하는 사람, 농구경기에서 세 번 연속 골을 성공시킨 선수에게 패스를 하라고 외치는 사람, 우주의 생명체와 채널링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 머피의 법칙을 경험한 사람, 사진처럼 선명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 등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이런 사람들에게 당신의 판단과 생각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해 보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오늘도 복채를 챙겨들고 무속인을 찾아가는 사람들, 신문 한 구석의 ‘오늘의 운세’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사람들, 혈액형으로 성격을 가늠하는 사람들은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객관성은 가능한가? 냉정한 판단력과 과학적 사고는 훈련을 통해 가능하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무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실수를 저질렀는지 차근차근 돌아보면,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편견과 선입견, 잘못된 정보들을 끊임없이 뇌에 저장하고 그것들을 강화시키기 위한 선택적 일화들과 지식들만을 저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하게 된다. 나만 그런가? ‘생각의 오류’는 ‘행동의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항존한다.

  양비론과 양시론을 펼치며 중립적 태도를 취하고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올바른 삶의 자세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들을 선별하고 가공하고 판단하고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생각의 오류’를 없애는 데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21세기에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으로서는 물론이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우리로 확장된 인류 전체가 반성해야하는 수많은 오류들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지나친 자신감에 넘치는 당신에게 보내는 저자의 충고에 귀 기울여 보아야 할 시간은 아닐까?


080119-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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