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뮨주의 선언 - 우정과 기쁨의 정치학
고병권.이진경 지음 / 교양인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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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발생 이후 가장 완벽한 사회 체제에 대한 고민은 계속된다.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를 이상적 세계로 그려냈지만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홍길동은 ‘율도국’을 허생은 ‘빈섬’을 실험했으나 소설 속의 환상의 섬들일 뿐이다. 인류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고 그 꿈은 영원히 실현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철학자나 경제학자 혹은 문화인류학자나 사회학자에게 그 원인을 묻는다면 제각각 다른 대답을 내놓을 지도 모른다. 인간의 이기적 욕망으로 인한 살육과 침략 전쟁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부조리한 현실과 모순된 세상을 위해 인간은 신을 창조했지만 그 분도 아직 우리에게 해답을 주거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 같다.

  21세기에 등장한 <코뮨주의 선언commun-ist manifesto>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연구 공간 ‘수유+너머’의 고병권과 이진경의 이름을 빌려 쓴 이 책은 발칙하고 신선하다. 기본적인 토대와 연구 성과들이 없다면 이 선언은 불가능했겠지만 서기 2007년에 대한민국에서 외치는 그들의 함성은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 참으로 난감해진다. 지금까지 흘러온 인류의 역사와 사회적 변혁의 면면들이 고스란히 녹아있으면서도 새로운 해석과 주장을 펼치는 이 선언문을 치기어린 발상이나 아웃사이더들의 외침으로만 보기에는 꼼꼼히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들이 많다.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선언>을 통해 세계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변혁을 주장했다. 급변하는 혁명의 시기에 선언을 한 걸출한 두 젊은이의 나이는 불과 서른과 스물 여덟이었다. 세계는 용광로처럼 변화의 불길로 들끓고 있었으며 세상은 곧 혁명으로 완전히 뒤바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완고한 세계를 뒤흔들긴 했지만 혁명의 기운은 손에 잡힐 듯 눈에 보일 듯 했지만 안개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 160년이 흘렀고 21세기 접어들었다. 대한민국에서 ‘코뮨주의’를 선언한 사람들의 마음과 갈피들을 들여다보는 일은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는 것과 같다. 현재까지 인류가 이룩한 역사와 사회적 토대는 결코 암울한 예측과 비관적인 전망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미래와 역사에 대한 해석과 전망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지만 지금 이대로의 현실이 바람직하거나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코뮨주의 선언>은 21세기를 위한 아니 인류 전체를 위한 보편적 이데올로기로 판단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혹은 어디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가. 삶의 역동적 변화 속에서 인류 사회가 만들어 온 문명과 문화 사회 제도와 체제는 자본과 화폐 제도로 대표되는 시스템 속에 갇혀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그 원인과 해법을 고민하려는 노력들은 지속되어야 하며 ‘공산주의’가 아니라 ‘공통체’를 전면에 내세운 ‘코뮨주의’의 진정한 가치와 실현 방식들에 대해 귀 기울여 보아야 할 충분한 이유와 타당성은 우리 생활 곳곳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부정과 비판이 아니라 우리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며 변화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며 더 나운 세상에 대한 꿈을 반영하고 있다. 몽환적이고 이상적인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고 삶의 목적과 방법에 대한 성찰이고 나와 우리에 대한 고민과 반성의 결과물이다. 고병권과 이진경 두 사람에 의한 발상과 전환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함께 꿈꾸어야 가능한 혁명에 대한 이정표이다.

코뮨주의자의 현실에 대한 긍정은 항상 현실에 대한 변혁을 내포한다. 현실을 긍정하지만 그 현실에 머물지 않기에 우리는 코뮨주의가 이념이라고 말한다. - P. 7

  머리말을 대신한 <코뮨주의 선언>은 본문으로 제시된 정치와 주체 그리고 감응이라는 영역에서 살펴보고 있는 세부적인 모델들을 제시하고 있다. 각각의 사람들이 지금까지 인류가 걸어 왔거나 고민해 왔던 부분들을 살펴보고 지금 우리의 현실과 미래의 삶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들을 정리해 놓은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난 혹은 아카데미즘 안에 머물러 있는 완고한 틀을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들은 우리들 삶의 자유를 표방한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기존의 형식적 틀에 온몸을 끼워 맞추려는 노력이 아니라 보다 유연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디자인하려는 노력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과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로크에서 촉발된 개인의 신체에 대한 ‘소유’의 개념 그리고 사유화의 길을 걸어온 인류의 재산권에 대한 반성은 나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사유화의 개념에 반대하는 급격한 코뮨주의가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겠지만 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대중이며 대중의 힘에 의해서만 모든 변화는 가능하다.

  대통령을 잘못 뽑아서 내가 먹고 살기 힘들어진 게 아니다. 이명박이 당선됐다고 해서 장밋빛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착각한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마르크스는 “‘모든 사람이 그가 원하는 분야에서 자신을 도야할 수 있는’ 상태, ‘오늘은 이 일, 내일은 저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한 사태를 자유”라고 말한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자유로워져야 한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구속과 억압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본과 소유의 압박에서 탈출할 수 있을 때에만 자유로운 삶은 가능하다. 그 대안적 삶의 모델을 제시하고 먼저 행동하는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조금씩 변화해 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사뮈엘 베케트의 말을 패러디 하자면 실패하더라도 아무도 실패해 보지 않은 방법으로 실패해야 하며 그 실패의 과정과 결과들에 의해 우리는 또 한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버릴 수 없다. 비록 160년 후에 다시 선언된, 혹은 새로운 세기에 대한 전망과 변혁의 가능성을 내포한 <코뮨주의 선언>이 헛된 희망과 이상적 꿈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을지언정 그 가능성과 변화의 노력까지 물거품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굳음 믿음이 필요하다. 선언의 마지막에 나온 말처럼 “자, 이제 우리도 웃으며 떠날 시간이다!”


080117-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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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고병권이 쓴 '민주주의'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5-25 15:02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무엇인가’를 묻는 책들이 태풍처럼 출판계를 흔들어놓고 있다.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바람이 채 가라앉기 전에, 뒤를 이어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바람이 불고 있다. 이제 여기에 다시 고병권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바람을 추가해야 한다. 그러나 고병권이 몰고 올 바람은 일시적으로 불고 지나갈 바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해서 되돌아올 바람이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사상 지형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파열을 내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