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 10대의 사랑과 성에 대한 일곱 편의 이야기 창비청소년문학 6
김리리 외 지음, 김경연 엮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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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꿈은 있다. 어릴 적 내 꿈은 서른일곱 살 아저씨가 되는 거였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리고 천천히 멋있게 늙어가는 나를 상상해 보았다. 그렇게 이루기 어려운 꿈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많은 함의가 포함된 ‘멋’있는 사람이 되긴 쉽지 않다. 2008년이 들어서면서 나이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다. 자신의 나이가 싫어진다는 것은 분명 늙어간다는 반증이다. 빨리 나이 먹고 싶어 애꿎은 떡국만 퍼먹던 시절이 그리워진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어쩌면 나도 이제 나이를 줄여 말하고 싶은 나이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또 하나의 증거는 ‘호기심’이다. 그것이 사라져간다.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의 경계를 알 수 없지만 이제 미치도록 궁금하거나 끝까지 파헤쳐 알고 싶은 것들이 줄어간다.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의 차원은 아니겠지만 분명한 변화중의 하나이다. 아는 것이 많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한 열정과 욕망이 사라져 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진다.

  10대의 사랑과 성에 대한 이야기를 묶은 <호기심>은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 여섯 번째 책이다. 일곱 명의 소설가가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쓴 단편이 묶여있다. 이번 주제는 ‘사랑과 성’이다. 10대 뿐만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관심과 재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다. 중요한 것은 10대라는 제한 조건이다. 2차 성징이 끝나고 사춘기를 겪고 나면 어른이 된다. 우리가 그들을 10대라고 부르든 청소년이라고 부르든 상관없이 그들은 성인의 몸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정신적인 성숙이다. 자신의 의사 결정권이 제한되고 사회적 억압이 기다리고 있으며 부모의 통제와 가정에서의 역할 때문에 그들은 갈등하고 고민하며 혼란을 겪는다.

  누구나 똑같은 성장통을 겪으며 어른이 되지만 부모와 사회에 대한 대응 방식은 각기 다르다. 스무 살이 넘도록 부모에게 기대거나 자신의 의지대로 세상을 살아갈 능력을 갖추지 못한 다 큰 어린이도 점점 많아진다. 그것은 단순한 경제적 자립 능력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나 자신의 신념과 의지, 꿈을 향한 열정과 신나는 노력이 부족해지는 것은 아닐까? 88만원 세대를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눈과 이제 10대의 홍역을 치르는 사람들의 눈은 제각각이다. 그들이 살아내야 하는 세상에 대한 고민과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은 그들의 꿈과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전근대적, 봉건적 사고방식과 새로운 세대가 지닌 가치관은 늘 충돌하고 갈등하며 혼란을 가중시킨다. 선악의 가치 판단은 무의미해지고 ‘사랑과 성’이라는 것도 쉽게 규정되지 않는 세대의 고민들을 소설가들은 잘 이해하고 있을까? 사회, 문화적 환경이 달라지면 ‘사랑’에 대한 개념도 ‘성’에 대한 태도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과 학교나 사회에서 보여주는 성인들의 가치관과 문화는 청소년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10대들의 ‘사랑과 성’에 대한 고민은 어쩌면 고스란히 성인들의 자화상일 수도 있겠다. 아련한 추억 속에 낡은 사진처럼 자리잡은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기에 현실은 훨씬 더 심각하다.

하지만 이 소설집에 나타난 아이들의 고민은 평온하며 안전하며 일상적이다. 김리리의 <남친 만들기>, 이혜경의 <공주, 담장을 넘다>, 임태희의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은 귀여운 수준의 고민들이고 순수하고 깨끗한 동화같은 이야기들로 비춰진다. 항상 심각하고 아픈 상황만을 다룬 소설이 청소년들에게 유익하겠느냐는 반문에는 할 말이 없지만 식상한 내용과 뻔한 전개와 결론이 보여주는 교훈적 혹은 전형적 스토리가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박정애의 <첫날밤 이야기>는 형식면에서 소설이 주는 의미를 찾고 있다. 청소년문학도 ‘문학’이라면 내용은 물론이고 전달 방식이고 구성면에서 참신하고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 박정애는 그런 면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훌륭한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금이의 <쌩레미에서, 희수>에는 유일하게 학생이 아닌 청소년이 등장한다. 제도권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거나 공교육의 범위를 벗어난 청소년들에 대한 고민들은 좀 더 심각하고 진지하게 고민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학생과 학생이 아닌 청소년 사이의 교감을 다루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겠다. 이용포의 <키스 미 달링>은 나이와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다룬다. 도덕이나 사회적 제도나 틀로서 사랑을 규정하거나 묶을 수 없거나 그것이 가능하다는 논리와 교훈이 아니라 재치있는 문장으로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고 가벼운 고민으로 넘겨 버리는 아쉬움이 있다.

  박수와 응원을 보내고 싶은 시리즈이며 분명히 필요한 종류의 책들이 발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욕심이겠으나 보다 깊고 다양한 방식의 고민들을 담아낼 수 있는 작가들의 노력과 출판사의 기획이 요구된다. <호기심>이라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주제를 가지고 10대들의 ‘사랑과 성’을 다루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그 시절을 거쳐 온 성인들에게는 생에 첫 경험들을 통해 성숙해가는 수많은 후배들을 이해하는 도구가 될 수 있겠다. 방학을 맞은 학생과 학생이 아닌 청소년들 그리고 그들의 부모들이 함께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계속되길 바란다.


080109-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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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0 01: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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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2 08: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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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2 20: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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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4 21: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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