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하라 팜 파탈 문학과지성 시인선 340
김이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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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이렌의 노래

더 추워지기 전에 바다로 나와
내 날개 아래 출렁이는
바다 한가운데 낡은 배로 가자
갑판 가득 매달려 시시덕거리던 연인들
물속으로 퐁당
물고기들은 몰려들지, 조금만 먹어볼래?
들리지? 내 목소리, 이리 따라와 넘어와 봐
너와 나 오래 입 맞추게

  별다방이라고 부르는 스타벅스의 심볼이 되어 버린 신화 속의 주인공 세이렌. 우리는 그녀를 이제 도심 한복판 커피 전문점에서 만난다. 여성성의 상징과 원형 그 유혹과 죽음의 그림자를 ‘세이렌’에게서 빌려 온 시인의 상상력은 명랑하다. 김이듬의 시집 <명랑하라 팜 파탈>은 불안한 영혼과 자의식의 충돌들이 넘친다.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시들로 가득하다. 그 불편의 이유가 다양하지만 감성과 이성 어느 부분에서도 공감하거나 쉽게 해석되거나 접근하기 어렵다.

  시는 항상 먼 곳에 위치해 있었다. 시의 시대라고 명명되던 80년대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물론 그 시대에도 서정윤의 ‘홀로서기’가 촉발한 대중적 감수성과 호기심을 넘어서지 못한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어찌됐든 밤하늘에 별처럼 밝게 빛나거나 오롯이 외로움을 간직한 채 빛나야 할 명징한 언어들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는 시인의 몫이다. 하지만 어느 한 구석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시가 있다. 독자 개인의 평가이겠지만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기만 하는 노래 소리처럼 뱃사람을 유혹했던 세이렌의 노래 소리만큼 김이듬의 시가 독자들이 마음을 훔치지는 못하는 듯하다. 시가 전해주는 울림은 대개 세 가지 정도가 아닐까 싶다. 먼저, 언어 자체가 주는 울림들과 언어의 직조 과정에서 빚어지는 관계들 사이의 아름다움이 주는 참신함이다. 내가 오규원을 좋아한 이유가 여기에 해당된다. 둘째는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에서 제기된 ‘낯설게하기’는 대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에서 오는 즐거움이다. ‘하나로는 꽃이 되지 않는 꽃’이 안개꽃에 대한 이수익의 관찰의 결과라면 전혀 낯설지 않은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움이다. 셋째는 서사성이다. 시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산문적 요소이다. 역설적이지만 산문을 압축하고 운율적 요소를 가미한 것이 시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백석과 이용악은 물론 시의 내용이 주는 감동은 형식적인 측면과는 구별되는 또 다른 요소이다.

  어떤 요소로도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시는 시가 아니다. 다만 어떤 측면에서든 기대 이하일 때 독자들은 본전 생각을 한다. 내게 김이듬의 시는 그렇게 읽혔다.

  이제 불이 필요하지 않은 시각

나는 겨울 저수지 냉정하고
신중한 빙판 검게 얼어붙은 심연
날카로운 스케이트 날로 나를 지쳐줘
한복판으로 달려와 꽝꽝 두드리다가
끌로 송곳으로 큰 구멍을 뚫어봐
생각보다 수심이 깊지 않을 거야
미끼도 없는 낚시대를 덥석 물고
퍼드덕거리며 솟아오르는 저 물고기 좀 봐
결빙을 풀고 나 너를 안을게


  이렇게 행간을 건너뛰는 의미망에 갇혀 파닥거리는 물고기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감동과 울림이 전해지지 않는다. 나를 위해 시를 써 줄 시인은 없겠지만 공감의 진폭과 울림이 큰 시들을 여전히 기다린다. 작가의 독자의 팽팽한 긴장의 끈은 항상 적당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비록 아무도 시를 읽지 않는 시대가 오더라도 말이다.


07122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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