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마을이다 - 위험 사회에서 살아남기
조한혜정 지음 / 또하나의문화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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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자기 의지와 무관한 일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의지박약이나 의존적, 외부적, 타인 지향적, 책임 회피 성향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많은 것이 인생이다. 절대로 공평하지 않으며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상은 쉽게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다. 개인의 입장에서 타인과의 관계나 사회를 조망하는 일은 결코 객관활 될 수 없다. 알면서도 아쉽고 허탈할 때가 많은 법이다.

  자기 삶의 중심을 어디에 놓을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이다. 직업과 연령, 성별과 지역을 떠나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며 생에 대한 태도는 다양하기만 하다. 문화인류학과 여성학을 전공한 조한혜정의 렌즈에 투영된 세상은 어떤 것일까. <다시, 마을이다>는 그 기록의 한 켠을 보여주는 칼럼집이다.

  신문에 실린 칼럼들은 시론時論이기 때문에 철지난 노래처럼 들릴 수도 있고 지나간 신문 뭉치처럼 거북하게 여기질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이 책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거의 7, 8년 전 칼럼부터 최근의 글들까지 다양하게 묶여 있기 때문에 기억이 아득할 수도 있고 최근의 일들일 수도 있다. 그것들을 바라보는 한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는 일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 다만 나와 다른 관점, 혹은 조금 빗겨선 자리에서 렌즈를 들이대는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몇 가지 생각의 갈피들을 집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근대에서 탈근대로의 이행기에 접어들었다는 사회학적 평가는 타당한가. 저자는 이론적으로 관점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아니 접근할 수가 없는 분량과 지면이다. 착한 국민 콤플렉스나 미국의 애국주의 혹은 천수만 개발 반대를 위한 삼보 일배 등을 통해 개발 독재 시대와 환경 문제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 남아있는 근대성을 발견한다. 도심 한복판 인사동에서 벌어지는 추석 축제를 통해 우리들이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어가는 것은 무엇인지 되묻고 있다. 개별 가정의 구조와 편의 시설이 문제가 아니라 이웃과 마을을 고려하는 것이 진정한 삶의 조건이 아니냐고 묻고 있다.

  ‘하자센타(http://www.haja.net)’를 운영하면서 이 땅의 청소년들에 대해 가졌던 관심과 애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고 일탈과 방황의 원인 그리고 그 대안과 미래를 고민하는 저자의 열정도 엿볼 수 있다. 우리들의 자화상이며 우리들의 미래인 그들의 모습은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그들 스스로가 비관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보여주고 가르쳐준 것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가슴 아프다. 가장 아름다운 나이에 가장 불행한 세대라는 ‘88만원 세대’에 대해 주목하고 있지만 그들 또한 과거와 결과물일 뿐이다. 책임 소재를 밝혀보자는 말이 아니라 이대로는 안된다는 위기 의식과 다함께 고민을 나눠야 할 문제라는 공통된 인식부터 필요하지 않은가.

  내 아이는 사교육비를 처발라 일류대를 목표로 경쟁에서 이기고 있으니 니들끼리 얘기해라, 다른 아이는 몰라도 내 아이는 그렇지 않다,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그렇지 우리 아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다 등의 생각을 한 번이라도 가져본 부모라면 지금 우리의 현실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공동체의 이데올로기, 이념과 갈등의 시대를 넘어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착한 후 이제는 가족과 개인의 행복과 이기적 욕망들이 더욱 거세게 넘쳐날 것이다. 대안교육과 홈스쿨링 등 대안들이 모색되고 공교육 자체의 변화가 절실하게 요구되지만 경쟁과 효율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면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어떻게 규정될까? 어느 시대나 갈등과 문제는 있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과 고민들이 사회를 지탱해 왔겠지만 끝없는 경쟁과 시험, 취업 전쟁과 육아 전쟁을 거쳐 주택과 노인 문제로 이어지는 대다수 서민들의 삶에서 희망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 그 희망은 돈으로 모두 해결될 수 있을까?

  새로움은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로부터 벗어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시간만 흘러간다고 해서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 갈 미래는 어떤 사회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합의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과반의 지지’ 혹은 ‘절대적 지지’를 받고 대통령이 되었다고 굳게 믿는 이명박은 우리에게 어떤 세상을 만들어 줄 것인가 하고 손 놓고 기다릴 일이 아니다. 내 손등을 찍고 싶어지지 않도록 스스로 행동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를 찍지 않았다고 해서 면죄부를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치가 우리를 구원할 수는 없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071223-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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