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의 진화 - 자기정당화의 심리학
엘리엇 애런슨.캐럴 태브리스 지음, 박웅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여우가 길을 가다가 포도를 발견했다. 포도는 너무 높은 곳에 달려 있다. 여우는 포도를 따려고 몇 번이나 시도하지만 결국 따지 못한다. 할 수 없이 포기하고 길을 가면서 여우는 중얼거렸다.
  ‘저건 신 포도일 거야.’


  심리학에서 흔히 말하는 ‘신포도기제’ 이야기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낮게 평가하는 인간의 속성을 정확하게 꼬집는다. 반면에 달콤한 ‘레몬기제’도 있다. 내가 가진 것을 과대평가하는 속성이다. 자기 합리화는 누구에게나 있다. 얼마나 많이 그리고 자주 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내가 선택한 물건과 사람과 학교와 직장에 대한 긍정적이고 관대한 태도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반면에 기회비용으로 지불한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저평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부정적 태도 또한 살아가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가 많다.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 긍적이고 낙관적인 자세로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나무랄 까닭이 없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 속에 양립할 수 없는 생각들이 대립하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이 때 인간은 적절한 조건을 만들어 자신의 믿음에 맞추어 행동을 바꾸기보다는 행동에 맞추어 믿을 조정하게 된다. 리언 페스팅어는 이것을 ‘인지부조화 이론’이라 명명했다. 이 이론을 토대로 ‘자기정당화의 심리학’을 파헤친 책이 <거짓말의 진화>이다.

  이 책은 의도적인 거짓말에 대한 심리학 책이 아니다. 사회심리학자인 엘리엇 애런슨과 캐럴 태브리스의 공동 작업으로 탄생한 이 책은 인간에 대한 연구 보고서이면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행동 양상과 그에 따른 심리 상태를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는 책이다. 인지부조화는 자기 정당화의 엔진이다. 이것을 토대로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부정확하며 심지어 기억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사실을 실증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과학자들의 실험과 제약회사들의 연구지원을 받는 의사들의 연구보고서 등 황우석까지 사례로 들어 자기 정당화의 사례들을 나열하고 있다. 광범위한 자료와 실례를 통해 우리가 간과하고 믿을 수 없는 사실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보여주고 있다.

  사법 전문가의 경우가 가장 심각해 보인다. 수사, 심문, 기소, 판결 과정에서 벌어지는 피의자들의 무죄 사례를 통해 그들이 보여주는 태도를 통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굳건한 믿음들이 얼마나 부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는 사랑과 결혼으로까지 이어진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심리적 매커니즘까지 읽고 나면 평소에 우리가 하는 행동과 생각 사이의 거리를 확인하게 된다. ‘인지부조화’를 ‘자기정당화’시키기 위해 우리가 기울였던 장치들을 확인할 수 있고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 나의 행동과 생각을 돌아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부조화’와 더불어 사는 방법에 대해 조언한다. 잘못이 저질러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조언은 철학자나 인생의 멘토 입장이 아니라 심리학자의 입장에서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시간이든 돈이든 노력이든 불편이든 결정의 대가가 클수록, 그리고 그 결과를 물릴 수 없는 정도가 높을수록 부조화는 커진다. 더불어 자신이 내린 결정에 따르는 좋은 것들을 과도하게 강조함으로써 부조화를 줄일 필요성도 커진다. - P. 39

부조화 줄이기는 자동 온도 조절 장치처럼 작동한다. 우리의 자존감을 계속해서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자기정당화에 둔감한 것이다. 우리가 실수를 하고 어리석은 결정도 내린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게 하는, 우리 자신에게 하는 작은 거짓말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 P. 50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했던 모든 말들과 행동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도대체 객관적이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이라고 믿었던 모든 판단들이 흔들리기도 한다. 사실과 진실은 다를 수 있으며 같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제각각 자신들의 진실을 믿으며 살아간다. 그러면서 상대방을 인정하고 자기 정당화를 줄여나가고 부조화를 줄이는 각자의 방법이 다르게 나타난다. 거짓말인줄도 모르면서 하게 되는 거짓말도 있을 수 있고,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지속되는 변명도 현실에서는 얼마든지 계속된다.

  스스로를 삼가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지 않기 위한 노력은 어쩌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인聖人이 아니면 불가능한 영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가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은 ‘자기정당화’의 위험성이다. 그것이 변명이나 거짓이 아니라 신념이나 믿음이라고 외칠 때 올 수 있는 불행에 대해 경고한다. 정치인들이 대표적이지만 의사나 사법 전문가, 군인 등 직종에 상관없이 자기의 역할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범할 수 있는 실수들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071219-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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