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사회성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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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하고 작은 존재들이 서로 연결되어 허공을 나는 모습은 아름답기만 하다.’

가을이면 V자 대형을 갖춘 새 떼가 하늘을 뒤덮었다.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장면 중 하나다. 운동장과 높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어디론가 날아가는 철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그 기나긴 여정에 대해 황석영은 『할매』에서 시공간에 새겨진 흔적을 장엄하게 묘사한 적이 있다. 자연이 곧 신이다. 아득하고 불가해한 심연으로부터의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 사람은 그것이 환청이 아님을 안다. 대개 ‘약하고 작은 존재들’의 자기방어 기제는 생각보다 단단하고 거칠다. 그것은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에서 편혜영은 아름답다고 말했으나 목숨을 건 도전과 날갯짓이다. 새들만이 아니다. 사회성 동물이 강하고 큰 개체일 리 없다. 인간도 사회성 동물이다. 새들처럼 서로 연결되어 굳건한 땅에 뿌리 내리려 쉬지 않고 걷고 달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 몸짓도 아름다울까.

편혜영의 소설은 서로 연결되어 허공을 나는 새가 아니라 산산이 흩어져 생존을 도모하는 파편화된 인간의 모습을 주로 다룬다. 단편집 『새들의 사회성』도 예외가 아니다. ‘자발적 실종’ 대행업자는 약하고 작은 존재를 증발시킨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매년 10만 명이 실종되고, 이중 8만 5천 명은 스스로 증발한다고 한다. 레나 모제의 『인간 증발』이 떠오른 단편「우리가 사는 곳」은 현실 부정으로 보이는 실종 혹은 증발이 능동적 욕망인지 수동적 회피인지 커다란 물음표를 남겼다. 사라지고 싶은 적이 없었던 사람이 있을까?

성실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최악의 노동자가 되기 십상이라는 걸 미처 몰랐다. - 「포도밭 묘지」, 97쪽

여상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한 고졸 여성 청년들의 이야기다. 은행원 한오의 죽음으로 이들의 현재와 과거를 들여다본다. 평범한 일상에 스민 고민과 갈등은 존재론적 생존의 의미를 묻는다. 도대체 삶이란 무엇인가, 같은 진부한 소설적 진실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이며 촉각적인 일상에 관해 편혜영은 따뜻한 위로를 보내는 대신 과다 노출 기법으로 읽는 이를 불편하게 한다. 그 불편함은 외면과 침묵에서 깨어나라는 자각이나 각성의 요구가 아니다.

눈 감은 사람은 깨울 수 없다, 잠든 사람과 달리. 피해자와 피의자로 만난 고등학교 동창 이야기를 다룬 표제작 「새들의 사회성」에서 신도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아니 ‘나’가 공범이 된 이유는 변명에 불과해 보인다. 그러나 한심한 사기 수법이나 삶의 태도를 쉽게 손가락질하기 어려워진 건 왜일까. ‘선택의 폭’이 사회적 계급을 말해준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이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들리는 이유는 단지 나이 탓은 아닐 것이다.

엄마는 매번 다른 사람의 시선을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다. 남들이 욕할 만한 일이라면 함께 비난하고, 남들 보기에 괜찮다면 근거 없이도 따랐다. 비난과 동조에 일관성이 있어 예측 가능한 면이 있기는 했지만 그 때문에 나는 자라면서 점점 엄마에게 거리를 두게 됐다. - 「아파트먼트」, 158쪽

자존감이 낮고 콤플렉스가 많을수록 서열화에 집착하며 구별 짓기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많다. 나이, 사는 동네부터 묻는 이유가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나 비교 우위에 서려는 몸부림은 생물학족 생존 본능과는 거리가 멀다. ‘다른 사람의 시선’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사회성 동물에게 동족의 시선과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정 욕구라는 DNA를 뼈에 새긴 인간의 본성은 동조압력을 극복하기 어렵다. 다만 이 대부분의 인간 유형이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연민과 극복의 대상일 때 문제가 발생한다.

하물며 거리 두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가족이거나 오래된 연인과 친구라면 어떤가. 사람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일관된 태도를 보이지도 않는다. 상황에 따라 다른 말과 행동으로 변신하는 게 아니라 세월의 흐름과 자기 보존 본능에 따라 합리화할 뿐이다. 편혜영의 소설 속 인물들은 선과 악, 주동 인물과 반동 인물로 구별되지 않아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쉽고 단순한, 전통적인 유형에서 벗어난 독특한 캐릭터를 구현하는 소설가의 능력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객관적 거리를 둔 관찰과 인간 존재의 한계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게 아닌지 싶다.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소설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문제 해결이나 정답을 찾으려는 게 아니겠으나, 불편함과 거북함을 직시하는 일조차 버겁다면 편혜영의 소설을 편애할 수 없다.

지금이야 이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으리라 여기지만, 잊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조차 결국 잊을 테니까. 그러라고 무슨 일이든 겪게 하는 게 삶이니까. - 「남은 사람」, 246쪽

김한수와 송지오, 경주, 영주, 나주 이모, 종오, 정서, 인수 등 「목욕」, 「초록 스웨터」, 「자매들」 등 각각의 단편에 드러나는 삶은 처절한 고통이나 극적인 사고, 견딜 수 없는 비극과 기막힌 행운과도 거리가 멀다. 어찌 보면 너무 평범해서 외면하고 싶은 나와 가족, 연인과 친구, 지인과 이웃들의 삶이다. 하루를 견디는 힘과 내일을 향한 희망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있을 수 없는 일은 없다는 사실 하나를 깨닫는 데도 한평생이 걸린다. 편혜영의 소설은 당신이 무슨 일을 겪었든, 어떤 불행과 고통과 절망과 불안과 우울과 불행 속에 놓여 있다고 해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푸시킨식 위로가 아닐 것이다. 다만 무슨 일을 겪든 잊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조차 결국 잊을 거라는 문장에 잠시 기대보라는 말이다.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을 테지만 무슨 일이든 겪게 하는 게 삶이라는 사실은 피할 수 없을 테니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지 못해도 오늘을 견딜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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