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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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자유 의지는 환상에 불과하다. 600쪽이 넘는 분량의 하드 커버는 읽기 전에 독자를 압도한다. 새폴스키와 ‘자유 의지’를 두고 기나긴 논쟁을 이어갈 준비를 마쳤다면 책장을 펼쳐도 좋다. 과학계와 철학계의 오래된 논쟁 중 하나인 ‘결정론’과 ‘자유 의지’는 인간 삶의 여백을 결정한다. 만약 노력, 의지, 변화의 가능성이 없다면 누가 인생을 열심히 살겠는가. 이런 단순한 반발부터 생기면서도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타인에 의한 고통, 우연이 겹쳐 만난 행운 등에 관한 핑계와 변명을 찾아볼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생긴다. 과연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우선 새폴스키의 선언은 도발적이다. 인간의 행동은 결정론을 따르지만 자유의지도 있다는 양립주의를 전면 거부하며 이러한 입장은 환상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자유의지가 생물학적 착각이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방대한 과학적 탐구를 설명하는데 이 책의 절반을 할애한다. 뇌과학과 신경학, 생물학과 물리학이 동원된 논증 과정은 길고 지루하지만 어렵고 딱딱하지는 않다. 충분히 이해 가능한 설명이다. 가만히 들어보면 논리적 모순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폴스키의 주장 뒤에 남는 문제가 너무 많다. 사회, 역사, 문화를 두루 섭렵한 새폴스키의 지적 탐구는 쉼 없이 이어진다. 대개 좋은 책은 새로움과 호기심에 머물지 않고 그 익숙한 것들의 사잇길로 우리를 안내한다. 구조와 심연을 연결 짓거나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 현상을 분석하고 세계를 확장한다. 그리고 반드시 질문을 남긴다. 그 후에 남은 숙제는 독자의 선택과 판단이거나 학계의 과제다. 물론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는 법과 제도, 사회적 규범과 질서 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살인자’에게 자유 의지가 없다, 라는 문장을 읽고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형법의 근간을 뒤흘어야 자유 의자가 없으니 무죄 판결을 내려야 할까, 아니면 예비 살인자들을 미리 걸러낼 제도와 장치를 마련해야 할까. 유전과 환경, 신경생물학의 관점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행동은 없다. 그러나 자유 의지가 부재하다면 ‘죄’를 묻거나 ‘잘못’을 따질 수도 없다. 어쩔 수 없는 일들 투성이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으니 애써 노력하거나 회피하지도 저항하지도 말라. 과연 그럴까?

겹겹이 포개진 거북이로 시작된 새폴스키의 질문은 과학에서 출발해 현실에서 마무리된다. 당연하다. 거의 모든 지식과 정보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질문과 호기심이며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와 미래를 전망하기 위한 도구로 작동한다. 나는 누구이며, 내 말과 행동의 원인은 무엇인가, 자기 삶에 관한 질문이 자유 의지의 부재로 모두 해소될 수 있을까?

어제와 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꿈꾸는 건 정신병 초기 증상이라는 말은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는 자기계발서의 논리다. 자유 의지가 없다면 나는, 아니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이 책을 읽는 동안 새폴스키의 이야기에 충분히 동의해도 좋다. 자유의지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따라가도 나쁘지 않다. 과학적 타당성과 합리성을 따지기 위해 이 책을 뒤적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독자는, 아니 나의 관심은 자유 의지의 유무가 아니라 인간의 말이 아닌 ‘행동’, 그 결과와 책임의 문제다. 그 숱한 선택과 결정에 작용하는 유전, 환경, 뇌과학의 인과를 넘어선 자리에 작용과 반작용, 과정과 결과가 남는다. 그에 따른 분석과 변화는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다. 교양 혹은 종교적 차원의 논쟁 거리로서 자유 의지를 소비하는 대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일들을 연결 지어 논쟁을 벌인다면 개별 학문의 연구자가 아닌 우리에게도 필요하고도 충분한 만큼 의미 있는 책이다.

우리는 생물학, 환경, 상호작용 등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의 총합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297쪽

인간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순수한 환원주의를 거스르는 카오스성과 창발적 복합성 그리고 양자 불확정성의 혁명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주사위, 그 예측 불가능성이 도박과 게임 중독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렇다면 인생은 얼마나 다른가. 불가해한 자기 삶의 복잡성과 통제 불가능한 인생사를 모두 자유 의지의 부재로 위안 삼을 수는 없다. 인간은 모두 코스모스의 질서 안에서 안정과 평화를 꿈꾸지만 카오스의 무질서가 배태한 불안하고 두려운 욕망이 없다면 인생은 또 무슨 재미일까? 우주에서 자유낙하를 했던 펠릭스 바움가트너는 자유 의지였을까, 아니면 레드불의 마케팅 도구에 불과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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