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의 열역학
김민준 지음 / 동아시아 / 2026년 7월
평점 :
인간의 진화 속도는 과학 기술의 발달과 사회, 경제 시스템의 변화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인간을 ‘털 없는 원숭이’에 비유했던 동물 생태학자 데즈먼드 모리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랑을 나누는 게 행복의 핵심이 아니겠냐는 심리학자 서은국의 말은 현대인 에 대한 정확한 분석처럼 보입니다. 급변하는 현실과 달리 우리 인간의 몸은 생각보다 과거의 본능과 욕망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지 싶습니다.
특히 변연계가 관장하는 ‘감정’은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 로봇 시대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3천 년 전 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트로이 전쟁의 원인을 살펴보면 헬레네와 파리스의 사랑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년 만에 집에 돌아온 오디세우스의 복잡한 감정은 어떤가요. 우리가 그때 그들의 사랑과 전쟁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건 인간의 ‘희로애락’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수많은 고전 문학의 주인공들은 살아 숨 쉬듯 현대인의 다양한 본능과 욕망을 대변합니다.
사람은 대부분 사랑, 분노, 시기, 질투, 슬픔과 같은 ‘감정’에 따라 말하고 행동합니다. 매우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태도는 감정의 합리화에 불과할 때가 많습니다. 삶의 목적과 의미도 결국 가슴 떨리는 기쁨과 환희의 순간, 가슴 벅찬 성취와 만족을 향한 기나긴 여정 안에 놓여있는 게 아닐까요?
이성의 시대를 산다고 착각하는 현대인에게 여전히 다루기 힘든 ‘사랑’과 ‘감정’을 과학자와 사회학자의 눈을 빌려 살펴보겠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다양한 감정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도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미국의 남부 어느 공대 강의실에서, “사랑은 에너지(E)다! 에너지는 열정(Q: Heat)과 행동(W: Work)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진다. 즉, E=Q-W!”라는 김민준 교수의 말에 학생들이 감탄합니다. 지루하고 딱딱한 열역학 제1 법칙으로 ‘사랑’을 설명하자 공대생들의 눈이 번쩍 뜨인 거죠. 과연 그렇게 간단하고 명료한 법칙이 사랑에 적용될까요?
그건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이 공식은 사랑을 설명하기 위해 단순하고 아름다우며 놀랍도록 정확하다는 저자의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일 수는 없습니다. 사랑이 그리 쉽고 정확한 이론 체계에 오차 없이 맞아떨어진다면 인생의 가장 큰 고민이자 숙제인 사랑 때문에 혼란스러운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토머스 루이스의 『사랑을 위한 과학』처럼 사랑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과 결이 조금 다르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랑을 열역학 법칙으로 분석하려는 노력이 의외로 신선합니다. 무엇보다 현실적인 사랑과 이별의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철학이나 문학에서 다루는 ‘사랑’과 뇌과학이나 물리학에서 다루는 ‘사랑’이 다르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우리가 궁금한 건 분석의 도구나 방법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대상 그 자체입니다. 개인의 내면을 온통 흔들어 놓고 열정에 휩싸여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의 에너지는 측정 불가입니다. 그 사랑의 깊이와 넓이, 상대를 향한 열정과 행동을 수치화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저자는 열역학 제1 법칙인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제2 법칙인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 사랑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주장합니다. 사랑이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일 수밖에 없다는 어느 사회학자의 말을 열역학 법칙으로 명쾌하게 설명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어렵지도 낯설지도 않습니다. 공대생들이 공부하는 이론과 수식에 익숙하진 않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누구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사랑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겁니다. 그만큼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복합적인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열역학 제1 법칙으로 사랑의 본질을 설명한 후 제2 법칙으로 비가역적 성격을 띤 사랑의 방향을 알려주는 대목부터 점점 흥미롭습니다. 사랑할수록 복잡해지는 엔트로피와 무질서의 법칙은 마치 열역학 법칙이 우리들의 사랑을 위해 만들어진 이론처럼 느껴집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사랑의 효율성을 고민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감정 변화를 경험하기 때문일 겁니다.
다시 생각해도 사랑, 참 어렵죠. 하지만 저자의 설명을 들어보면 자연의 복잡계를 설명하는 단순하고 변치 않는 이론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사물과 자연을 이해하려는 노력만큼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의 본질과 변화 과정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조금 더 지혜롭게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