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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5년 12월
평점 :
섭씨 40도 턱밑까지 올라온 한반도의 여름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삼한사온이 사라진 지 오래됐고 이제 봄과 가을은 흔적기관처럼 기억 속에나 존재하는 계절이 될지도 모른다. 단지 환경과 생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고 하루 아침에 해결 될 일이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알만큼 시간이 흘렀다. 자연은 인간을 품지도 내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작용과 반작용처럼 드러낼 뿐이다. 김민준의 『사랑의 열역학』을 읽다가 열역학 제1 법칙인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관한 설명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인간의 모든 본능과 열정과 욕망과 기대, 그로 인한 말과 행동이 불러온 파장은 켜켜이 쌓여 어딘가로 흐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지지 않는 에너지는 응축되고 폭발하거나 또다른 곳에서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단순히 군산 하제마을 600년 된 팽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문명의 역사와 시간이 빚어낸 엔트로피 현상에 관한 보고서에 가깝다. 비가역적인 세월을, 지나온 순간들을 우리는 왜 그토록 수없이 돌아보는가. 미련과 아쉬움 때문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려는 욕망이거나 미래를 위한 준비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때때로 거시적인 안목의 서사를 통해 살펴본 한반도의 역사가 너무 허망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한 인간의 욕망으로 공동체 전체가 망가지는 숱한 경험들, 이미 권력과 자본을 거머쥔 자들의 욕심이 부른 참사가 반복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또 어디를 향해 걸어야 할까.
세계적인 거장, 무슨무슨 상과 후보, 누구누구의 추천, 혜성같이 나타난 신인, 괴물 같은 상상력, 탁월한 문장과 표현 운운하는 수식들이 이제 눈을 어지럽히지 않을 만큼 읽었다. 눈 밝은 독자들을 현혹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면 좋은 책들은 때때로 출간 사실 조차 모르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출판 생태계의 선순환을 기대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진입한 듯 보이는 건 개인적인 걱정이길 바라지만 양질의 콘텐츠와 팔아야 하는 출판사의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는 지점들이 조금 더 넉넉하게 확보되지 않는다면 손해는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돌아간다.
오랫동안 황석영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제 줄리언 반스처럼 자신의 마지막 작품임을 선언하지 않아도 마지막일 수도 있는 글들이 아쉽고 귀하다는 생각을 했다. 할매는 한반도와 한민족의 얽키고 설킨 인연과 아픈 시간에 관한 상징적 알레고리다. 마침 전주에 회의가 있어 군산에 들러 할매를 보고 왔다. 팽나무 자체보다 새만금을 가로지르는 도로와 군사기지, 주변 하늘과 하구의 흔적들이 눈에 밟힌다. 이야기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건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아니더라도 정치와 사회, 문화와 예술 곳곳에는 나름의 서사가 숨어 있다.
군산이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지역의 특성과 현재의 모습은 지난한 과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할매가 품은 이야기, 현재에 이르는 과정은 고스란히 우리 삶의 뿌리이며 미래에 해당한다. 모든 이야기가 서로 다른 기억과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라면 지나칠까. 현재의 한숨과 미래를 향한 기대가 어우러져 모두 오늘을 견딘다. 그 삶이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하든 마찬가지다. 다만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하는 것들에 관해서는 합의 대신 이해와 경청이 필요해 보인다.
황석영은 이 소설을 통해, 아니 할매를 위해 이야기를 입혀 기억의 흔적을 남겼다. 그 이야기가 어떻게 현실과 조우하며 남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래도 계속해서 남은 시간 동안 소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내길 바랄 뿐이다. 누구나 기억은 흐릿해지고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이 온다. 나이와 상관없이 거시적 안목에서 자기 삶을 살피는 사람에게 필요한 소설이겠으나 읽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라고 외치는 새폴스키는 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삶을 통찰한다. 그것이 소설이든 과학이든 누군가 나름의 방식으로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한, 독자들은 다행스럽게도 풍성한 이야기로 가득한 또 하나의 세계를 구축해 나갈 수 있겠다.
기억들은 각각 다른 층을 형성했다. 팽나무의 시간은 흐르는 게 아니라 쌓여가는 겹겹의 층이었다. - 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