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과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사르트르식으로 말하자면 지식인들의 사회적 위치가 달라졌고 특수성과 보편성 측면에서 고민거리가 줄었다. 지배계급인 부르주아의 속내를 폭로하거나 까발릴 것도 없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제 지식인의 역할은 행동과 실천만 남은 것일까? 그런 논리라면 모든 지식인은 활동가나 혁명가가 되어야 하나? 직접 움직이지 않는 지식인은 정체성에 혼란이 온 것이거나 사이비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본에서 사르트르가 3일간 강연했던 내용을 고스란히 살려 낸 책이 이번에 새로 발간된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다. 고등학생까지 읽힐 목적으로 어려운 용어와 인용한 사람들에 대한 각주까지 상세하게 안내되어 있다. 가장 쉽고 이해하기 쉽게 펴낸 책이라고 볼 수 있지만 내용 자체의 어려움은 쉽게 희석되지 않는다. 구체적이고 친절한 해설이 따라붙지 않는 다음에야 한계가 있는 것이다. 번역본이 보여주는 용어상의 한계는 ‘세계-내-존재, 준-의미작용, 비-지식’과 같은 철학용어는 그 자체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는다. 사용된 맥락보다 먼저 개념이 잡히지 않으니 문맥 속의 의미를 잡아낼 뿐이다. 하이데거를 위시한 실존주의 철학이 성행했던 시기의 용어와 개념들은 우리의 사유 방식으로 이해하기가 만만치 않다. ‘존재’라는 개념 자체도 ‘be’동사가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없는 개념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물론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한 언어가 다른 언어로 차용되면서 발생하는 당연하고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철학적 개념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거칠게 훑고 넘어가도 사실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퇴색하지 않는다. 동양사람인 일본인을 대상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던 사르트르가 강연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미롭다. 서양과 동양의 구분이 아니라 패전의 멍에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일본인들은 우리 시각으로 보면 지독한 ‘빨갱이’였던 사르트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여유가 있었던 것일까? 어쨌든 이렇게 시간이 흘러도 그 의미와 약발이 떨어지지 않는 책을 고전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볼 수 있다. 사르트의 어법은 강경하고 거칠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그가 살아온 삶이 그러하듯이 올곧은 선비의 모습이다.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지 않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문장에서 느껴지는 힘은 강연을 통해 전해지는 목소리만큼 분명하고 단호하다. 3일간의 강연을 통해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지식인의 기능’, ‘작가는 지식인인가?’에 대해 이야기 한다. 강연에서 주로 다루어지고 있듯이 지식인은 불안한 존재다. 지배계급(부르주아)와 피지배계급(프롤레타리아) 사이에 위치한 중간자의 입장으로 지배자의 특수성과 피지배자의 보편성을 모두 간직한 모순적 존재로서 살아가야 하는 숙명이다. 결국 지배계급에 기대어 살아가 수밖에 없는 이들은 피지배 계급인 노동자 계급의 목표와 일치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두 계급 사이의 모순과 갈등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노동자 계급의 포괄주의와 보편성은 지식의 전문성과 일치한다. 따라서 특수성에 기댄 지식인의 삶은 필연적으로 모순이 생기게 되는데 바로 여기에 지식인의 역할과 기능이 있다. 삶의 외적 모순을 극복하고 내적인 갈등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기능해야 하는 것이 지식인의 기능과 역할이라는 것이다. 노동자 계급의 보편주의에 기초한 지식인의 전문성은 결국 지배계급의 착취와 억압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변했지만 소수자에 의한 다수의 지배는 더욱 공고해졌다.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는 더욱 강력해졌으면 네트워크를 형성해가고 있다. 서서히 그 전모가 밝혀지는 검은 괴물 그룹 삼성이 그 증거이다. 산업자본은 현대 사회의 지배계급이다. 맑스주의에 기초한 사르트르의 사유는 멈출 줄 모르고 계속되는 자본의 증식과 거대화를 예견한 듯하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사르트르의 사유 방식은 거칠지만 설득력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인간은 ‘상황속의 존재’일 뿐이다.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지식인으로 자처하거나 그런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그들의 과연 지식인인가? 지식인의 기능에 충실한가? 더불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는 지식인인가? 지식인인의 기준은 무엇인가? 기생충처럼 자본에 달라붙어 있거나 왜곡된 시선을 선전하는 사이비 지식인은 없는가? 두 눈 뜨고 지켜보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며 지식인의 역할과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참된 지식인을 만나고 싶은 것이 우리의 작은 소망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가 지식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071127-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