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 감춰진 것들과 좌파의 상상력
최세진 지음 / 메이데이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정치적 성향이 좌파이든 우파이든 많은 사람들은 현실에서 혁명을 꿈꾸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지킬 것이 많은 사람들은 점점 더 견고한 성을 만들어 나간다. 지금 이대로가 좋다. 변하지 않고 좀 더 확고하게 기반을 다지고 싶어 한다. 이런 사람들을 기득권층 혹은 보수라고 부른다. 물론 물질적인 재산이나 권력, 명예의 높고 낮음으로 쉽게 좌우를 나눌 수는 없지만 대체적인 성향은 이것들의 소유 유무에 따라 달라진다. 아니 어쩌면 이념 때문에 그것들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 삶을 살았느냐에 따른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생각의 차이가 모든 것을 바꾼다.

  사람들은 대체로 정치적 이념이나 성향을 쉽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확실한 자기 신념이나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잘 모르거나 무관심할 수도 있다. 전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나 변화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지금 현재 나의 삶이 쉽게 달라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다. 정치 따위에는 관심도 없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사람들의 생각은 절대로 욕심이 아니다. 어쩌면 너무 평범한 바람일 수도 있으니까. 세상은 바보처럼 우직한 사람들 때문에 조금씩 변화해 왔다. 그것은 거창한 이데올로기도 정치적 신념도 아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모름지기 이러해야 한다는 소박한 믿음과 그것을 실천에 옮긴 사람들에 의해 변화해 온 것이다.

  엠마 골드만의 말을 인용한 최세진의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는 제목이 지나치게 강렬하다. 내용을 포괄하고도 남음이 있을 만큼.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강력한 무기 중의 하나는 상상력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좌파적 상상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들의 이면을 살펴보고 드러난 현상에 만족하지 않으며 본질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일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들 중 하나일 수 있다. 모르는 게 약이고 배속 편한 분들을 위한 책은 아닌 것 같다. 좋은 게 좋은 거고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돌이킬 수 없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신상에 이로우며 대세를 쫓아가는 것이 편한 삶의 방식을 가진 분들게 권하고 싶은 책이지만 김규항의 말대로 그런 분들은 이런 책에 손도 대지 않는다.

  혁명은 거창한 대의명분도 범접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그저 생활 속에서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한 실천이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 세상이 180° 뒤바뀌는 것만을 혁명이라고 배웠다. 프랑스 혁명, 동학혁명 등 성공이든 실패든 상관없이 기존의 질서와 틀을 완전히 버리고 전혀 다른 세상으로 진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온하고 과격하며 때론 폭력적이고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틀리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혁명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전부는 아니다.

예전에 ‘혁명은 어느 순간 펑하고 터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마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사회의 급격한 질적 변화’는 어느 날 그렇게 급작스럽게 올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날’이 오기를, 혹은 ‘그날’은 올 것이라고 줄기차게 노래했습니다. 그래서 오로지 그날을 위해 참고, 희생하고, 결의하고, 투쟁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며 보니까 그날은 그렇게 오는 것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혁명은 그날부터 시작하나고 믿었던 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의식의 급격한 변화가 어느 한 날에 일어날 리 없습니다. 오히려 그날은 오랜 논쟁과 투쟁, 반란의 결과물이고, 하루하루가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그 혁명은 나날이 계속되는 일상 속에 지속되는 삶 속에서 계속되고 있었고,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 ‘머리말’ 중에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이 말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책을 펼치자마자 나온 이 대목을 읽다가 가슴이 먹먹해졌다. 온몸으로 부딪혀 살아온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간접적으로 이 말을 전해 듣는 독자인 나는 최세진의 말을 제대로 이해했을까?

  이 책은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다. SF라는 장르를 가지고 자본주의와 노동자의 관계를 미래의 로봇으로까지 확장시킨 소설과 영화를 소재로 풀어나가고 있다. 즐겁고 재미있는 해커들의 이야기는 ‘혁명’이라는 단어가 왜 즐거움과 연결될 수 있는지 그리고 상상력이 없으면 불가능 한 것이 혁명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해 준다. 2부에서는 바그너, 쇼스타코비치, 마야코프스키 그리고 조지오웰과 존 레논, 피카소, 미야자키 하야오 등 우리에게 익숙한 예술가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무엇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는지 그들의 삶과 예술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첨바왐바의 노래와 기행들은 대중 음악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혁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혁명은 즐거운 것이며 아름다운 것이다.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혹은 역사를 통해 엿볼 수 있는 사람들과 사연들은 우리 인간의 역사가 다름 아닌 혁명의 역사였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세상은 얼마나 변화할 수 있으며 어떻게 변해가는 가를 보여주었던 대표적인 사건은 2002년 ‘효선이와 미순이’를 위한 촛불 집회였다. 그것을 계기로 통신의 역사와 좌파적 상상력으로 이루어낸 변화들을 살펴보는 마지막 4부는 미래를 위한 제언으로 읽힌다. 인터넷에선 모두가 평등하다는 순진한 생각을 버리라는 충고로 이 책은 끝이 나지만 저자가 보여주고자 했던 세상의 감추어진 진실들과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들은 유쾌하고 즐겁게 보인다. 변화의 중심에서 혹은 고통과 억압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나 예술들이 미래를 위한 현실의 희생으로만 비춰지진 않는다. 내가 춤출 수 있을 만큼 즐겁고 행복한 일이 아니라면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소리가 들리고 무언가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다르게 볼 수 있는 시선과 새로운 인생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우리들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혁명이다. 체 게바라의 거친 수염이 아니라 양복쟁이의 단정한 넥타이에서 혁명은 시작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상업주의에 물든 체 게바라의 초상권 문제로 알베르또 꼬르다가 열받은 적이 있지만 평전에 붙어 사은품으로 온 목걸이를 나는 내일도 목에 걸고 출근을 해야겠다. 공짜로 얻는 체의 초상화가 그려진 목걸이를 걸고 현실 속의 혁명을 꿈꾼다면 체도 꼬르다도 이해하겠지...


07112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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