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335
김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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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비에 젖은 낙엽만큼 처연해 보이는 것도 드물다. 심장을 태울 듯 타올랐던 붉은 단풍과 강렬한 노오란 단풍잎이 11월 겨울비에 젖어가는 저녁 어스름의 불빛들은 불행을 위장한다. 화려했던 시간들은 뒤에 두고 떠나는 아쉬움을 그나마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은 어둠이다. 낙화가 그러하듯이 첫사랑도 그러하다.

낙화, 첫사랑

1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내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손 내밀지 않고 그대를 다 가지겠습니다

2

아주 조금만 먼저 바닥에 닿겠습니다
가장 낮게 엎드린 처마를 끌고
추락하는 그대의 속도를 앞지르겠습니다
내 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습니다
그대보다 먼저 바닥에 닿아
강보에 아기를 받듯 온몸으로 나를 받겠습니다


  삼십대 후반에 이른 시인의 목소리는 생의 한가운데 서 있는 위태로움과 희미한 깨달음들이 듬성듬성 뒤섞여있다. 그녀의 목소리는 일반적인 시의 문법에서 조금 비켜 서 있다. 언어의 내밀한 조직들, 소리의 울림들이 잔잔하다. 어렵지 않은 단어들과 쉽게 닿는 문장들이 머리보다 먼저 가슴에 도달한다. 이해되기 전에 전달되어야 한다는 엘리어트의 말에 충실하다.

  여전히 시의 존재와 기능은 위태롭다. 시를 읽지 않는 시대는 낡은 유물처럼 식상해져 버렸다. 언어의 기능이 살아 있는 한 시를 읽는 사람과 시를 읽지 않는 사람은 존재한다. 이분법적 구분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시에게 다가가는 사람들이 마음들에 여유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부대끼고 속삭이기도 하다가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통하고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만큼 크지 않지만 작지 않은 진동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상황과 느낌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당연하게도 자신만의 몫에 대해서는 누구도 말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생활이든 꿈이든, 현실이든 이상이든 관계없이. 어느 구석진 계절의 끝자락을 여미는 사람들의 가슴에 오롯이 전해질 수 있는 슬픔이 있다면 그녀의 시는 조용히 다가설 수 있겠다. 내 몸속에 잠든 이가 누구이든지 간에.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앞의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을 다른 방식으로 나누어 본다. 시를 읽는 사람과 시집을 읽는 사람. 그것은 왜 다른가? 한 편의 고운 시는 유행가 가사처럼 가슴에 스몄다가 모래위에 내린 비처럼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리기도 하고 가슴에 낙인을 찍어 큰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한 권의 시집은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 소리 없이 조용히 흐르는 강물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참을성 있게 집중해야 한다. 낮은 목소리로 평화로운 오후의 햇살을 느끼게 하다가 역사의 뒤안길에서 울부짖는 처절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다. 김선우의 시집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는 그렇게 읽혔다. 큰 호흡과 느낌으로 한 권의 시집을 따라가다 보면 중간에 표제작을 만난다. 대표 선수를 만나 한 판 겨뤄보려는 심사가 아니라 제목으로 선택된 시의 갈피들을 조금 더 샅샅이 훑어보게 된다.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꽃나무

꽃이 지고
누운 꽃은 말이 없고

딱 한 마리 멧새가
몸을 튕겨가는 딱 그만한 천지

하늘 겹겹 분분하다
낮눈처럼 그렇게

꽃이 눕고
누운 꽃이

일생에 단 한 번
자기의 밑을 올려다본다


  무엇을 노래하든 그것을 읽어내는 독자는 다른 음성으로 듣는다. 시의 운명은 그러하다. 내 곁에 누가 머물러 있는지 돌아보다가 두고 온 사람의 뒷모습만 안타깝게 그리워하기도 하는 것처럼 이미 작가에게서 떠나온 시들은 수런거리며 독자에게 가끔 엉뚱한 이야기를 전하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읽는 것은 시가 아니라 어쩌면 내 삶과 내 마음의 갈피들인지도 모르겠다. 창 밖에 천둥이 치고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을 보여주어도 나는 어둠 속에 내리는 겨울비의 ‘소리’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거미

새벽잠 들려는데 이마가 간질거려
사박사박 소금밭 디디듯 익숙한 느낌
더듬어보니, 그다

무거운 나를 이고 살아주는
천장의 어디쯤에
보이지 않는 실끈의 뿌리를 심은 걸까

나의 어디쯤에 발 딛고 싶어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발은 魂처럼 가볍고
가벼움이 나를 흔들어
아득한 태풍이 시작되곤 하였다

내 이마를 건너가는 가여운 사랑아
오늘 밤 기꺼이 너에게 묶인다


  시인은 생활인이고 문명인이며 언어의 노예이다. 모든 존재 이유인 말들을 거미줄처럼 뱉어내야 하는 천형. 안타까움보다 더 깊은 마음으로 가끔씩만 그들에게 다가가고 싶어진다. 말해버리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 그래서, 너에게 아니 모든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나 괜찮습니다’라고. 그리고 문득 고개를 들어 창 밖 어둠 속에 눈길을 건넨다.

‘너 괜찮은 거니?’라고.

내 고단함을 염려하는 그대 목소리 듣습니다
나, 괜찮습니다
그대여, 나 괜찮습니다
                                     - ‘사랑의 빗물 환하여 나 괜찮습니다’ 중에서



07112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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