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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기원
토니 모리슨 지음, 이다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22년 6월
평점 :
지구상의 거의 모든 집단은, 권력이 있든 없든, 자기 집단의 신념을 강화하기 위해 타자를 만들어 세움으로써 비슷한 방식으로 타 집단을 통렬히 비난해 왔다. - 29쪽
집단뿐만 아니라 개인은 더더욱 그렇다.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을 타자화하는 습성은 본능에 가깝다. 친밀감, 유대감, 관계 양상에 따라 역할극이 바뀔 뿐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주체적 삶에 대한 절대 고독은 모든 인간의 숙명이다. 다른 사람을 의미하는 타인과 달리 ‘타자’는 사르트르의 ‘대자’, 레비나스의 ‘절대적 타자’와 같이 사유 주체 너머의 존재를 의미한다. 일상적 용어든, 철학적 개념이든, 타인이든 타자든 지구는 '나'를 중심으로 돈다. 대개 육체적 욕망과 본능에 충실한 각자의 일상과 미래가 읽기의 바탕이라면 모든 텍스트가, 단어와 개념과 문장이 존재의 주위를 맴돈다. 검은 피부를 가진 작가 토니 모리슨은 세계 인식의 출발을 차별에서 시작한다.
그것은 감각적 차이, 본능적 공포와 다른 사회적 질서와 규범 혹은 암묵적 시선과 태도의 문제로 연결된다. 드러내고 헤집어 본질을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소설가의 일이라면 토니 모리슨은 제 역할에 충실하다. 일반화할 수 없는 개인의 경험과 감정을 토로하는 게 아니라 지역과 국경과 피부색을 넘어 개별 독자의 멱살을 쥐고 흔들며 네 안의 상처와 고통, 열등감과 차별적 경험으로 치환하라고 소리친다. 유대인, 흑인, 아랍인 등 주체만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획득한 문제의식은 계속해서 변형된 채 갈등의 여지를 남긴다.
텍스트 힙으로 2030 세대가 책과 독서 모임을 인스타로 소비하든, 지적 허영으로 가득한 욕구를 충족하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든 전국 방방곡곡 세계 도처에서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언제 어디서 어떤 책을 앞에 놓고 토론이 이어지든 너무나 익숙한, 그러나 대안과 방법을 찾기 힘든 주제는 반복된다. 타인의 기원이 그리스 로마 시대 노예에서 출발했거나 농경 사회 이후 저장과 축적으로 사유재산이 가능해진 시대를 배경으로 하거나 상관없이 구별이 아닌 차별화 전략은 사라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거라는 비관적 전망은 지극히 개인적 견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차원이 아닌 사회적 제도와 규범, 교육과 지향점은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데 방점이 찍혀야 한다. 맹자는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서로 다른 주장, 각자의 견해를 존중해야 한다는 일반론은 최소한의 기준과 합의된 질서 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언제부터 강남역 사거리가 태극기 물결로 뒤덮였는지 알 수 없다. 표현의 자유, 정치적 신념은 무제한 보장될 수 없다. 여전히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대한민국을 토니 모리슨의 증조 할머니 시대과 비교하면 지나칠까. 어쩌면 우리 안에 파시즘, 자기 안의 선량한 차별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정도면 충분하지 싶다. 마사 C. 누스바움의 『타인에 대한 연민』, 말콤 글래드웰의 『타인의 해석』이 토니 모리슨의 소설보다 추상적이지만 철학적, 현실적 측면에서 직관적이다. 테오도르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에서 말한 ‘이디오진크라지’와 고든 올포트의 『편견』이 타인의 기원을 설명할 수는 없으나 타자화의 본능과 대책에 대해서는 조금 더 깊이 고민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도 있겠다.
그나저나 누군가 마들렌처럼 과거를 소환한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에는 누구와 함께 앉아있었는지 전생의 기억처럼 아득하다. 남은 시간 동안 또 어떤 책과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책과 사람, 삶과 이야기가 허공 중에 떠돌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