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 한 법의학자가 수천의 인생을 마주하며 깨달은 삶의 철학
이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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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일어난 일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인생을 기쁨과 행복으로만 채울 수는 없는 법이다. 슬픔과 불행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온다,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로마 공화정 시대, 개선장군의 화려한 행렬 맨 뒤에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고 반복해서 외치는 노예를 두었다. 가장 찬란하고 빛나는 승리의 순간이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경고다. 눈부신 청춘의 뒤안길에서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죽음을 우리는 애써 외면하며 사는 게 아닐까.

오늘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내일을 즐기기 어렵다. 현재를 즐기라는 오래된 금언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순간순간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죽음을 생각하며 하루살이처럼 살라는 뜻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절대 진리 앞에 겸손하라는 조언이다. 망설이고 미루는 대신 도전하고 실천하라는 가르침이다. 피할 수 없는 미래를 모른 척하지 말고 정면으로 응시하며 준비할 시간이다.


30여 년간 4천 구의 시신을 부검한 법의학자의 이야기 속에는 삶의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이 모두 담겨있다. 수많은 죽음 앞에서 저자가 느꼈던 감정, 그로 인한 생각의 갈피들 속에는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뇌가 스며있다.


사연 없는 죽음이 어디 있으랴. 모든 시신에는 소설보다 극적인 사연이 숨어 있다. 원인을 알 수 없어 '사인 불명'이라고 표기하지만, 그 이면을 들춰보면 인간의 탐욕과 증오, 혐오와 공포 등 다양한 감정과 욕망이 꿈틀댄다. 각종 범죄와 연루된 시신은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증명하듯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법의학자 이호는 그 시신들을 부검하며 거짓과 진실을 가리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며 생의 마지막 순간을 정리한다.


죽은 자가 산 자들에게 주는 가르침은 생각보다 죽음이 삶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니 삶과 죽음은 어깨동무를 한 채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종 질병뿐만 아니라 사건, 사고 그리고 자연재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이 매일 죽는다. 그중에서도 갑작스럽고, 예상하지 않은 죽음이 남긴 의문을 푸는 법의학자라는 직업은 인문학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해석한다.


그러나 과정과 방법은 달라도 누구에게나 결과는 같다. 저자가 경험으로 풀어낸 이야기들이지만 '죽음 수업'은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삶의 수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너무 늦기 전에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지식과 정보를 전달할 목적으로 이 책을 쓴 게 아니다. 자기 경험과 생각을 나누며 개별 독자들에게 이제는 '죽음'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라고 촉구하는 듯하다. 특히, 여름 햇살처럼 강렬하고 뜨거운 청춘이 지난 사람들이라면 재테크와 건강 관리보다 중요한 '죽음 수업'을 시작할 때가 아닐까.


사람들은 대개 죽음이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자동차 거울의 경고문구처럼 생각보다 가까이 놓여 있다. 법의학자 유성호는 구체적으로 '엔딩 노트'를 준비하라고 충고한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첫 번째는 생물학적으로 숨이 멎었을 때, 그리고 두 번째는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이 죽었을 때다. 이 노트는 첫 번째 죽음을 맞이하는 일인칭 시점의 죽음에 관한 준비 과정이다.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죽음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죽음이란 무엇인가.


장기 기증, DNR(연명치료중단) 동의 여부, 유서 작성, 장례 방법 등 죽음에 관한 준비를 미리 하지 않으면 '나'의 죽음이 살아남은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가중한다. 이인칭, 삼인칭 관점에서 바라본 '죽음'은 일인칭 시점인 '나'의 죽음과 조금 다르지 않은가.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들여다본 법의학자가 자신에게도 머지않아 다가올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과 태도는 옷깃을 여미게 한다. 가족, 친구들과의 이별 등 자기 삶의 마무리는 한 인간의 삶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규정하게 한다. 죽음 이후에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머물기 때문이다.


저자는 노년, 상실, 애도, 존엄사 등 죽음과 관련된 실제적인 이야기를 통해 역설적으로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감에 대하여, 이별과 죽음에 대하여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자기 삶의 마무리, 즉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은 나이와 상관없이 '좋은 삶'을 위한 다짐이 된다. 연명 치료와 장례식에 관한 이야기가 나이 드신 부모님이나 노인들에게만 필요한 준비가 아니다. 죽음을 위한 일상적이고 실질적인 고민과 준비가 오히려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의 바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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