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의 습격 - 편리와 효율, 멸균과 풍족의 시대가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들에 관하여
마이클 이스터 지음, 김원진 옮김 / 수오서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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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라디오가 대중에게 방송되자 처음으로 온종일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다. 권태의 탈출구가 생긴 것이다. 1950년대에는 위대한 텔레비전이 등장했다. 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2007년 6월 29일, 아이폰이 탄생하자 따분함은 영원하고 완전한 사망 선고를 받게 되었다. 동시에 우리의 상상력과 사회적 유대 또한 따분함과 운명을 함께했다.

계속 찾아 읽고 싶은 작가는 아니지만 한 권 정도는 더 읽어보고 싶었던 마이클 이스터의 책을 살폈다. 『가짜 결핍』에 이어 읽은 『편안함의 습격』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시인 김수영의 말을 패러디 하자면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끈기와 노력이다. 온몸으로 쓴 글은 독자에게 온몸으로 읽힌다. 소설이라면 ‘핍진성’이라 할 만한 ‘진정성’에 담긴 글이다. 그 함의는 ‘진심’이라는 피상적 의미와 결이 조금 다르다. 범죄자도 그를 변호하는 변호인도 ‘진심’을 담는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누구나 최선을 다하고 진심을 담지만 그 뜻과 의미는 차이가 크다.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전해진 ‘쿠이보노Cui bono’가 판단과 선택의 기준으로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너무 뻔하다. 현대사회에서는 경제적 이익이 그 최종 목적지다. 편안하게 이익을 얻으려는 마음, 익숙한 자리를 차지하며 위기를 외면하는 태도는 그대로 자기 삶의 결이 된다. 누가 쉽고 편한 삶을 마다하겠는가.

마이클 이스터는 알래스카로 사냥을 떠난다. 그 생생한 야생의 기록과 전하려는 이야기가 교차편집되어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행간에 숨어 있는 이야기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라는 단순한 자기계발식 충고가 아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너’라고 채찍질하며 게으른 태도를 버리라며 ‘킵고잉keep going!’을 외치지도 않는다. 다만 편안함이 선이고 불편함은 악이냐고 묻는다. 현대 문명의 정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면 온통 야만의 역사로 느껴진다. 인터넷이 없던 아날로그 시대, 비행기가 없던 지구, 기차와 자동차가 없던 시절은 어떤가. 편리와 효율이 생존 본능과 감각을 삭제했다. 점점 더 편안하고 안락한 삶에 길들여지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과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아니 그보다 중요한 건 신체적 안전을 넘어 습관적 사고와 편향의 위험성이다. 나이와 성별, 학력과 직업, 인종과 종교를 넘어 현재 우리가 직면한 심각한 경고등은 지나친 정보가 아닐까. 검색과 요약으로 무장한 인공지능이 오히려 자기 확신을 강화시켜 생각하는 능력을 기르지 못한다. ‘내말이 정답’인 사람들이 과거에도 없지 않았으나 이제는 타인의 생각이나 주장을 경청하지 않는다. 그것은 종종 ‘태도’의 문제로 귀결되며 지식과 정보의 총량이 아니라 타인과 세상을 대하는 능력으로 환원된다. 너는, 아니 나는 어떤 존재인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고 있는가. 너무 당연하고 뻔해 보여 스스로 질문하지 않는 이 편안한 세상(아파트 브랜드 아님)에서 왜 마이클 이스터는 편안함이 곧 위기라고 경고하는 것일까.

알래스카 오지에서 33일간 극한 추위와 싸우며 순록 사냥을 떠난 그의 취재기는 뇌과학과 정신분석학, 진화심리학과 운동생리학과 인류학을 버무려 중독, 우울, 불안, 자살, 비만, 번아웃 등에 관한 현대인의 문제와 원인을 들여다본다. 물론 그 모든 문제의 원인이 편안함으로 귀결될 순 없으나 저자의 지적과 제안은 복합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과 대안을 마련하는데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시키는 대로 하면 고민이 없고 불편하지 않다. 사람 사는 세상이 원래 그렇다고 생각하면 불만도 없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후자가 행복할 가능성이 크다.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이 모두 생각 없는 사람은 아니지만 문제를 외면하고 눈감는 사람일 가능성은 매우 크다. 카스텔리오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를 무시했던 중세부터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는 편안함에 대한 도전이 인간을, 그리고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혜택을 받으며 무임 승차한 대다수 구성원이 때때로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하곤 한다. 나를 불편하게 하지 말라고 외치면서. 그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라는 걸 모르지 않지만 그래도 한발씩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그 익숙함과 편안함으로부터 벗어나라고 경고하는 마이클 이스터 같은 사람들이 가끔은 당신, 아니 나의 삶에도 필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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