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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망상의 시대 - 자기기만의 심리학
어맨다 몬텔 지음, 김다봄 옮김 / arte(아르테) / 2025년 5월
평점 :
기 드 모파상의 「목걸이」나 『여자의 일생』을 읽었다면 그녀의 인생이 달라졌을까.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타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한 인간의 지나친 ‘욕망’은 범죄다.
합리성에 관한 판단을 넘어서 견고하게 자리한 판단 기준은 때때로 개인과 사회를 위험에 빠뜨린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직 종사자, 소수 권력자와 정치인들이 오히려 확증편향의 우를 범한다. 다양한 인지 편향cognitive bias을 인정하는 것이 자기 객관화의 시작이다. 사람과 상황을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던 지난 시간을 떠올려 보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관점을 바꿨고, 시선이 달라졌으나 그것이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실천으로 이어졌다고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그것이 인지적 무의식으로 작동하며 새롭고 낯설게 대상을 바라보고 상황을 파악하는 연습으로 이어져 질문과 의심을 멈추지는 않고 있다.
선악을 명확히 구분하는 확신과 신념은 때때로 ‘합리적 망상’이 된다. 인지 편향의 가장 주된 원인은 엄청나게 늘어난 정보다. 대학생 수준(chatGPT-3)에서 이제 박사(chatGPT-4)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됐다는 인공지능을 24시간 뇌의 일부로 활용하며 사는 현대인들은 더욱더 자기 확신에 빠질 위험이 높다. “모른다”는 진술은 회피와 외면의 변명이 아니라면 내뱉을 일이 별로 없는 시대를 맞이한 게 아닐까. 조금만 찾아봐도 검색과 요약으로 핵심을 전달받을 수 있다면 누가 누구에게 뭔가를 가르치고 설명하는 일도 필요 없어질지 모른다. 학교의 기능, 학습의 형태, 공교육의 체계, 자격증과 전문성을 가늠하는 기준에도 상상할 수 없는 변화가 올 날이 멀지 않다.
어맨다 몬텔이 ‘주술적 과잉 사고’라고 명명한 개념은 유튜브에 절인 뇌를 가진 대다수 현대인에게 ‘잠시 멈춤!’이라고 외친다. 심리학에서 주로 다뤘던 11가지 인지 편향은 익숙한 개념들이다. 그러니 이 책 또한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렴풋한 문제를 선명하게 들여다보는 과정이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현상을 분석하는 대개의 저자들이 그러하듯 몬텔도 명쾌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제시했더라도 모두에게 적용될 리 없다. 편향의 항목과 정도가 다를 테니 당연한 일이겠으나 모든 독서는 개별화 작업이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이 편할 리 없고, 남들 눈에 좋아 보일 리도 없다.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숭고하던 시절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이제 철 지난 추억담으로만 남았다. 문해력은 텍스트 뿐만 아니라 미디어를 넘어 사람과 상황에까지 적용돼야 한다. 무엇이든 읽어낼 수 있는 분석 능력과 그것들의 인과 관계를 파악하고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 종합적 통찰력을 기르지 않는다면 합리적 망상의 시대를 온몸으로 즐기는 사람이 될 것이다.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 의심이 전제되지 않은 생각들, 아니 ‘의견들’은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옳다고 변명하거나 확신에 찬 신념으로 확정한다면 이름 없는 자기 종교에 불과할 것이다. 믿음에 관한 논쟁은 불가하니 서로를 존중하면 그뿐이지만 이들은 대개 타인의 생각과 판단은 ‘틀렸다’고 선언하기 일쑤다. 몬텔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 가득한 시대를 합리적 망상의 시대라고 명명한다. 편향을 인정하지 않는 다수의 사람들이 모인 집단, 그러한 시대는 공포스럽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가졌던 원시 시대 인류보다 폭력적이고 위험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것이 아마도 이 책의 저자가 현생 인류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