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 인공지능 신화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마크 그레이엄.제임스 멀둔.캘럼 캔트 지음, 김두완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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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에서 에이전트 AI 시대로 넘어간다. 극소수 과학기술 종사자들이나 개발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터넷의 대중화를 넘어선 파도가 밀려온다는 희망 섞인 기대 혹은 일자리에 대한 공포가 혼재한 현실은 산업 혁명 시절 러다이트 이래 반복되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면 마크 그레이엄과 제임스 멀둔, 캘럼 캔트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보자.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든 현실 적응 문제는 개인의 삶을 지배한다. 취향과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생활의 문제로 진입한 AI 이야기다. 우간다의 데이터 주석 작업자, 영국의 머신러닝 엔지니어, 아이슬란드의 기술자, 아일랜드의 예술가, 영국의 물류 노동자, 미국의 투자자, 나이지리아의 노조 활동가 등 일곱 명의 ‘노동자’의 삶을 밀착 카메라로 들여다보는 이유는 자명하다. 곧 나와 너, 우리들의 모습일 예정이기 때문이다. 직종과 세부적인 업무가 달라도 AI가 미치는 거대한 파고를 넘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인류가 지난 200여 년 동안 자본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삶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왔다면 이제는 AI로부터 소외될지도 모르는 인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일곱 명은 대표자가 아니라 사례에 불과하다. 전문직부터 단순 노무직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사회 변동은 인류의 삶, 인간의 생각과 태도를 일순간에 바꿔버린다. 전통적, 아니 각자의 세계관, 인간과 세상은 그러할 것이라는 일종의 관성적 태도와 믿음에 균열이 발생하는 건 오랜 학습과 사유의 과정을 거치기보다 충격적 경험과 하나의 사건 때문일 수도 있다.

원제는 ‘Feeding the Machine’는 AI가 인간을 먹고 자란다는 제목만큼 공포를 느끼게 한다. 일종의 사회적 경고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통 사람들에게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미래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노동 환경의 변화에 대해서는 예의주시해야 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구조와 기능은 이 역사적 변화를 모두 견디며 잉여가치를 몰빵 해왔다.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듯하지만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현실이다. 실제 노동 현장에서 겪는 고충, 우리가 겪어야 할 미래, 변화에 대처하는 태도가 모두 개인의 몫일 수도 없다. 다만 커다란 변화의 흐름을 읽는 안목과 비판적 사고는 언제나 나를 나로 살게 하는 기본적 덕목이다.

장밋빛 전망, 디스토피아적 경고를 넘나들며 조금 더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적응과 실천의 문제라면, 모든 일이 그러하듯 생각하고 준비하고 실천한 만큼 자기 인생에 변화를 가져온다.

비봉출판사에서 출간한 『자본론』을 완역한 김수행 교수가 정년 퇴임한 후 서울대에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를 임용하지 않았고, 경제학과에 과목조차 개설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류동민 교수의 책을 몇 권 읽으면서 척박하지만 새로운 시선과 활력을 불어넣는 관점이 유지된다고 생각한 건 순전한 착각이었다. 일명 ‘서마학’에서 여름학기에 개설한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입문 강의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다음 주에 종강이다. 메시지만큼 메신저의 매력도 중요하다는 점에서 아주 조금 아쉽지만, 오랜만에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현실에 필요한 이야기들을 다시 곱씹는 중이다. 노동자로 살면서 노동조합을 비난하거나 그 중요성과 필요성을 간과하는 사람들은 AI와 무관하게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나 해결책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정답 없는 세상에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거나 내일을 꿈꾸는 우리에게 AI와 카를 마르크스는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주제일까. 그렇지 않다.

이 책에 등장하는 AI 관련 노동자들도 어디에서 일을 하든 어떤 일을 하든 결국 비슷한 상황과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혐오와 배제를 무기로 극단으로 치닫는 사람들이 넘치게 된 이유를 정치 유튜버에게만 돌리는 것은 매우 손쉬운 진단이다. 저자들은 마지막 8장에서 ‘인공지능 시대의 노동전략’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AI와 무관하게 인간의 문제로 환원된다. 기계가 아닌 사람에 대한 고민이 언제나 바탕을 이룬다. 그들의 결론과 나의 결론 그리고 너의 결론이 다를 수는 있으나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는 이론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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