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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 시대 - 종교의 탄생과 철학의 시작
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양인 / 2010년 12월
평점 :
글쓰기라는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시대를 통찰하거나 삶의 의미를 고민하기 위해서는 거시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통시적 관점으로 인류의 역사와 문명발달의 흐름을 파악하는 건 지금, 여기 ‘나’를 확인하기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역사는 현재를 살피는 원인이며 오래된 미래다.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신의 역사』는 객관적성이 돋보인다. 종교인이 쓴 신과 종교에 대한 글은 신앙생활의 일환일 것이다. 신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다.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은 인간의 무지와 공포에서 출발한다. 수많은 신들이 존재하던 시대를 지나 유일신의 시대로 접어들며 유럽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문화로 대표되었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은 불교나 힌두교와 양상이 다르다. 시대와 상황을 반영한 교리는 21세기에도 문명의 충돌을 일으키며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근대 이후 과학에게 내준 권위와 아우라를 되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종교의 힘, 신의 역할이 줄어든 적도 없다. 일상에서 정치, 사회에 이르기까지 뿌리 깊은 역사와 문화적 토양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 문명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중국과 인도, 그리스와 페르시아는 문화적 교류 없이 각자 문명을 구축하며 철학과 종교가 발전했다. 야스퍼스는 이 시기를 ‘축의 시대Achsenzeit’(『역사의 기원과 목표』, 1949)라 명명했고 카렌 암스트롱은 이를 세분화하며 기원전 900~200년에 이르는 시기를 『축의 시대』에서 톺아본다. 신화의 시대를 거쳐 자연의 보편법칙을 살핀 후에 인간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과정이 인류 문명의 발달 과정이다. 이제 그 관심과 지향점이 사라진 시대를 맞이한 걸까. 폭력과 혼돈의 시대에 다시 ‘축의 시대’를 소환한 저자의 의도는 마지막 부분에서 읽을 수 있다. 세분화한 시기마다 그리스와 중국과 인도와 페르시아 지역에서는 예수, 소크라테스, 공자, 석가모니, 모하메드 등 숱한 인물들이 명멸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보존된 고전classic은 우리가 접하는 사상과 문화와 예술로 남아있다.
축의 시대가 드리운 길고 넓은 그림자 안에서 우리는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인공지능 시대를 고민하면서도 인간의 지성과 감성은 여전히 축의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과 달리 ‘인간’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존귀하게 여기게 된 건 아마도 축의 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인식적 태도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종교와 철학 혹은 윤리라는 이름으로 문화와 전통 속에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아니 무엇을 위해 사는가. 시대를 통찰하는 눈, 현재를 살피는 안목, 미래를 전망하는 관점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질문들 앞에서 주저하거나 길을 잃고 헤맨다. 어쩌면 안개가 자욱한 새벽길에 서서 방향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선명한 갈림길 앞에서 고민하는 사람이 더 괴롭다.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망설인다면 나오미 배런과 카렌 암스트롱의 이야기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각자가 선택한 목표와 방향, 삶의 지향점이 다를 테니까. 그러나 누적된 시간과 인간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동안 자연스럽게 각자의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읽을 이유도, 생각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