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연 정암고전총서 플라톤 전집
플라톤 지음, 강철웅 옮김 / 아카넷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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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취가 가시기 전 다시 술자리에 앉은 아재들은 전날 과음을 핑계로 술잔을 앞에 놓고 치열한 드립 대결을 펼친다. 사랑에 관한 철학적 논쟁 혹은 에로스에 관한 역사적 고찰 혹은 현실적 욕망에 대한 각자의 시선들. 우리는 여전히 ‘사랑’ 없는 인생을 생각할 수 없다고 믿는다. 그것은 남녀 간의 사랑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사랑, 사물과 자연에 대한 사랑, 학문과 지혜에 대한 사랑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와 분야는 차고 넘친다. 뿐만 아니라 자본과 권력에 대한 사랑, 출세와 성공에 대한 사랑 등을 포함해서 그 모든 관심과 열정과 집착과 몰입을 통칭해서 사랑이라 부른다. 사랑 아닌 것이 없다.


이성애가 본능적 욕망의 문제가 아니라는 전제로, 당대 아재들의 소년 동성애 옹호를 위한 기나긴 변명을 현대인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미소년들을 향한 아재들의 욕망(에로스)과 기나긴 논박을 위해 벌인 ‘심포지엄Symposion’은 소문으로만 전해진다. 아폴로도로스가 향연에 참석했던 아리스토데모스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니 기억의 오류는 물론 오해와 합리화도 곁들여졌을 터. 플라톤이 기록한 향연의 내용은 결국 소크라테스와 디오티마의 대화를 향해 나아간다. 파이드로스, 파우사니아스, 아리스토파네스, 에뤽시마코스, 아카톤의 이야기는 에로스의 기원과 유래 그 의미와 역할에 대한 부조扶助, eranos에 해당한다. 각자의 지식을 공유하고 서로 다른 관점을 점검하여 에로스에 관한 진지한 성찰에 이르는 주제 토론은 흥미진진하다. 앎이 아름다움이다. 에로스를 넘어 절제와 정의와 용기를 지나 아름다움을 향해 걷는 인간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인생은 진선미眞善美로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분의 이야기는 플라톤의 의도에 부합하는 듯 진한 여운을 남겼다. 우리는 끊임없는 탐진치貪瞋癡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다수 현대인이 겪는 불안과 허무는 자기 삶의 지향점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남녀 간의 에로스를 넘어 아름다움으로 나아가려는 기원전 아재들의 철학적 깨달음에는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어렴풋이 우리가 사는 이유와 방법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아마 일요일 저녁에 모인 사람들 마음속에 똬리를 튼 각자의 욕망이 아닐까 싶었다.

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서경덕도 아니고 알키비아데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소크라테스라니! 플라톤의 의도가 무엇이든 욕망을 절제하라는 지극히 단편적이고 교훈적인 목적은 분명 아닐 것이다. ‘에로스는 아름다운 자, 그래서 사랑받는 자가 아니라 아름다움과 추함 사이에 있는 자, 그래서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자’라는 정의가 그렇다. 에로스가 아름다운 몸을 사랑하는 단계를 지나 절제와 정의를 위한 용기로 나아가는 과정이라면, 그곳에 이르지 못해도 못해도 좋다. 그 어딘가,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호기심과 질문, 그것을 향한 탐구와 열정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오늘-여기 하루의 삶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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