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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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채플린의 말이나 행복한 가정의 공통점과 불행한 가정의 다양성을 간파한 톨스토이만큼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글은 행간에 숨은 의미를 애써 찾으려는 헛된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막힌 프랑스 국경 앞에서 절망했던 발터 벤야민과 브라질에서 자살한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음을 헤아릴 방법은 없다. 어차피 타인의 고통은 추론적 감상에 불과할 테니.

생의 마지막 2년 동안 쓴 아홉 편의 글은 아이러니하게도 온기와 희망을 담고 있다. 그러나 고통스런 현실이 배제될 수고 절망하지 않았다면 자살하지 않았을 거라는 어설픈 결론에 도달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가 무너진 시대를 온몸으로 겪은 이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오늘의 대한민국과 비교한다. 또 다른 방식의 반지성과 무논리와 비이성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정치적 이념과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의 문제가 아니다. 경청과 소통의 부재가 폭력을 양산했던 유럽의 그때 그 시절을 닮아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면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에밀 시오랑의 오래된 금언을 반복하며 기다리면 될까. 어두울 때에야 보이든 것들이 있다는 걸 슈테판 츠바이크가 아니면 모를까. 우리는 새벽에, 어둠 속에서 무엇을 보는가. 아니, 낮과 밝음은 시간이 해결해 주는 걸까. 인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시대를 반복하면서도 우리는 사랑 혹은 신의 이름으로 현실은 견디며 살아간다. 희망이 고문이 아니었던 시대가 있었을까.

누군가는 니힐리즘으로 누군가는 실용주의로 ‘지금-여기’를 견디라고 충고한다. 1940년에 쓴 몇 편의 글이 주는 교훈 혹은 감동이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는 믿음 이외에 오늘과 내일을 견뎌야 하는 우리에게 다른 길이 있을까. 지구 반대편까지 기나긴 여정을 겪으며 슈테판 츠바이크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특별하지는 않다. 어쩌면 수없이 반복되었거나 새로울 것 없는 삶의 지혜들이다. 누구나 알고 있어도 아무도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

아주 얇은 책, 적은 분량에 그림을 곁들여 부담을 덜고 읽는 호사를 느끼게 해주기 좋은 도구. 읽는 사람이 특별한 게 아니라 어두울 때에야 무언가 보이는 눈을 뜨게 해주는 텍스트의 행간에 머무는 시간이 중요하다. 하늘이 맑고 푸르고 누군가의 생이 마감되어도 또 누군가의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떠난 자가 남긴 기록은 과거를 소환하는 대신 현실을 톺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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