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세기가 달라졌기 때문에 달라지는 변화는 없다. 인위적인 시간 구분일 뿐이지만 우리가 20세기를 돌아보는 이유는 두 세기에 걸쳐 살아가는 행운(?)을 누리는 특권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행위는 구체성을 띠기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전체적인 맥락과 흐름을 파악할 수 있고 전후 관계와 사정을 알게 된다. 시간의 흐름은 모든 것을 포용하며 많은 것들을 반성하게 한다. 물론, 과거를 바라보는 눈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객관적 거리라는 것이 불가능 할 수도 있지만 지나간 시대를 돌아보는 일은 현재와 미래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척도일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나간 기억들을 더듬게 된다.

  서경식의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은 지난 세기를 온몸으로 살아냈던 사람들을 저자 나름의 주관적 기준으로 뽑았다.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이라는 부제는 적절해 보인다. 시인 로르카부터 서승과 서준식의 어머니 오기순에 이르기까지 당대를 뒤흔들었던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묵묵히 혹은 치열하게 신념을 지켰던 사람들이 첫 번째 기준이 된 듯하다. 20세기는 기억할 만한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다. 특히 1936년 스페인 내전과 1973년 칠레의 쿠데타가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된다. 지금도 카탈루냐 자치 문제는 스페인에서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1936년 프랑코의 반란과 1973년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는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다. 자연사할 때까지 장수한 피노체트나 5.18의 주역으로 전 재산 29만밖에 없는 전두환이나 우리는 여전히 부끄러운 역사 속을 거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아는 게 별로 없다. 그래서, 알고 싶어서 오늘도 읽는다.

  ‘육성으로 듣는 열정의 20세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장석준의 <혁명을 꿈꾼 시대>는 기억할 만한 연설을 중심으로 23명을 내세워 20세기를 정리하고 있다. 지난 세기의 역사를 정리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읽을 만 했던 책이다. 서경식의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읽기 좋은 책이다. 두 책에서 겹치는 사람은 딱 세 사람이다.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파블로 네루다, 살바도르 아옌데가 바로 그 사람들이다. 초점이 다른 책이므로 중복된 사람들이 큰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관심을 갖고 보아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겠다.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이끌고 볼리비아 혁명을 뛰어든, 사르트르로부터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는 평가를 받은 체 게바라는 말할 것도 없고 1936년의 스페인과 1973년의 칠레 쿠데타를 경험한 파블로의 네루다와의 인연 그리고 체 게바라처럼 의사 출신으로 칠레의 인민 정부를 이끌다가 카스트로의 선물인 기관총을 들고 대통령 궁에서 총에 맞아 죽은 살바도르 아옌데의 삶을 들여다본다. 20세기를 기억해야 하는 많은 것들 중에서 사건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누구를 손에 꼽을 것인가?

  우리에겐 한일합방과 일제 강점기, 해방과 한국전쟁, 5.16 군사쿠데타와 5.18이 있다. 한 세기를 몇 개의 역사적 사건으로 정리하는 것은 얼마나 허망한가. 개별적인 사건들 속에 깃들인 한과 눈물은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현대사를 정리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계속 될 것이다. 20세기에 기억할 만한 한국인을 중심으로 지난 세기를 정리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겠다. 누가 떠오르는지 헤아려보자.

  한국 사람이지만 일본에서 살아온 서경식은 20세기 후반에 이 작업을 시작했다. 49명은 세계사의 관점이나 일본의 역사를 중심에 놓고 볼 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들만을 엄선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사에키 유조, 아이미쓰, 가모이 레이, 마키무라 고우, 오구마 히데오, 하라 다미키, 가네코 후미코 등등 일본인 들은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에 비해 안중근, 김구, 홍범도, 김산, 윤동주, 김지하, 박노해 등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다. 그 밖에 파블로 카잘스, 바실리 칸딘스키, 에리히 케스트너, 안네 프랑크, 프리모 레비 등 세계사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이 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의 인물로 3분할 수 있으나 크게 의미는 없다. 일본의 상황과 입장에서 일본 사람들에게 읽힐 목적으로 쓴 짧은 글들이기 때문에 대표성에 의문을 제기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인물들의 면면을 들여다 보며 우리가 지난 세기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갖는 것이 의미가 있다.

  회한과 한숨으로 가득한 비극의 세기라고 밖에 말해질 수 없는 질곡의 세월을 견뎌왔다. 21세기에는 사람이 사람답게 존중받고 전쟁이 없는 평화만이 가득한 세기가 될 수는 없을까 하는 상상은 공상에 가깝게 느껴진다. 9.11 테러로 21세기의 문을 열었고 이라크에 대한 침략 전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과 가자지구, 코소보 사태는 암울한 미래를 예견한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야만의 역사는 우리에게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은 선명하게 가슴에 남는다.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시대를 두 눈으로 쳐다본 사람들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사람들은 이 밖에도 더 많다. 그들을 기억하는 것은 같은 실수와 비극을 반복하지 말자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 세상은 누군가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저자의 바람은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두 ‘사라진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070928-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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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9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28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eptic 2007-10-02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은 평전 모음 같은 느낌인데...다시 한번 정리하기에 좋은 책인것 같습니다...덕담 나눠주시니 제가 감사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