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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속는 이유 - 똑똑한 사람을 매혹하는 더 똑똑한 거짓말에 대하여
대니얼 사이먼스.크리스토퍼 차브리스 지음, 이영래 옮김 / 김영사 / 2024년 4월
평점 :
한 번 속는 건 속이는 사람이 나쁘지만 두 번 속는 건 속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타당한가. ‘속는다.’라는 우리 말에는 사기, 착각, 오류 등 다양한 상황을 함유한다. 살다 보면 사기꾼에 속거나 보이스피싱을 당하고, 스스로 상황을 오판하기도 하고, 단순한 실수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사람과 상황에 속거나 자기 자신을 속이거나 결과는 다르지 않아도 해석과 대책은 명확히 구별해야 한다. 인지 심리학자 대니얼 사이먼스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는 이와 같은 인간의 ‘심리’를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대상은 ‘속는 사람들’이다. 속이는 사람이나 속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다. 속는 사람들의 속성과 심리 상태 분석은 평범한 일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고민과 자책의 실마리를 덜어준다.
속임수의 출발은 ‘진실 편향truth bias’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처음 보는 사람을, 그 사람의 말을 믿는다. 디폴트 값인 인간의 각종 ‘편향’은 생존을 유리하게 진화했을 거라는 추정들에 힘이 실린다. 말콤 글래드웰은 『타인의 해석』에서 “우리는 이 결정이 아무리 끔찍한 위험을 수반하더라도 진실을 기본값으로 놓는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으면 사회가 굴러가지 않는다. 그리고 신뢰가 결국 배신으로 끝나는 드문 경우에 진실을 기본값으로 놓은 것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비난이 아니라 동정을 받아 마땅하다.”라고 진단한다. 이것은 “진실기본값과 거짓말의 위험 사이의 상충 관계trade-off는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이따금 거짓말에 취약해지는 대가로 우리가 얻는 것은 효율적 의사소통과 사회적 조정이다. 이득은 대단히 크고 그에 비해 비용은 사소하다. 물론 가끔 기만을 당한다. 이는 일처리의 비용일 뿐이다. - Timothy R. Levin, Duped: Truth-Default Theory and Social Science of Lying and Deception(University of Alabama Press, 2019), Chapter 11.”라는 주장에 대한 단순한 해석이 아니다. 인류 사회의 문명을 이룩하며 숱한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속성이었다. 그래서 투명성은 일종의 신화라고 일갈한다. 인간 사회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양궁 국가대표 선발시스템을 어디에나 적용할 수 없다니 안타까울 따름이지만 사기와 속임수는 진실편향에 대한 일종의 일처리 비용이라고 주장을 반박하기는 어렵다.
지나치게 많이 받아들이고 너무 적게 확인하려는 우리의 성향을 점검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저자들은 사기를 당하는 사람의 인지심리, 즉 우리 모두를 취약하게 만드는 사고와 추론의 패턴을 설명한다. 누구나 가끔은 속는다는 전제다. 빈도의 차이일 뿐 속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습관과 후크가 그것이다. 습관은 집중, 예측, 전념, 효율의 문제이고 후크는 일관성, 친숙함, 정밀성, 효능의 문제다. 어느 쪽이든 덜 받아들이고 더 확인하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관습적 사고가 큰 재앙을 부른다. 비판적 사고가 결여된 개인과 사회에는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위정자들에게 속는 국민이 문제이듯, 맹목적 수용 태도가 비판 기능을 상실하게 한다. 긍정적 사고, 낙관적 태도의 위험은 ‘진실 편향’과 다르다. 인지 심리학으로 분석할 수 없는 개인차가 심하다. 학습과 토론, 사유하는 능력은 가방끈의 길이로 좌우되지 않는다. 인간의 속성을 넘어 사회심리학으로 확대 발전시킬 수 있는 연결고리가 조금 아쉽다.
사기가 판치는 시대, 속임수에 말려들지 않는 법이라는 부제는 후크다. 똑똑한 사람을 매혹하는 더 똑똑한 거짓말에 대한 사례가 이 책에 충분히 설명되어 있다. 지식과 정보가 부족해서 속는 게 아니고, 전문지식이 부족해서 사기를 당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믿음은 욕망과 기대에 근거하며 자기 자신조차 속이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늘 곁에 있다는 게 문제다. 선과 악, 빛과 어둠, 거짓과 진실은 법정 다툼에서 실체적 진실을 따질 때나 구별해야 하는 이분법적 논리가 아니다. 우리가 겪는 일상은 매 순간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으며 하얀 거짓말과 사기의 거리를 가늠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개인의 삶에 레드팀을 운영할 수도 없고 외부인의 객관적 조언을 수시로 요청할 수도 없다. 인간의 인지심리를 안다고 해서 덜 속을까 싶기도 하다. 아주 오래된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에 관한 이야기로 명성을 얻은 저자들은 연장선에서 지극히 인간적인, 너무나 당연한 사고 패턴과 인지 편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교묘하게 활용하는 기업, 이용하는 개인과 사회에 속지 않으려는 노력은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작은 바람이겠으나 저자의 조언대로 “수용과 확인 사이에의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속이기 힘든 사람이 된다는 것은 모든 속임수를 피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속임수가 언제 발생할 수 있는지 인지하고 중요한 순간에 그것을 피하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