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고 국민의 안녕과 인권을 지키는 최고의 법집행기관이자 인권보호기관”이라는 검찰청 홈페이지의 소개글이 현실에 부합하는가. “검사는 국민에 대한 봉사자이며 공익의 대표자로서 범죄를 수사하고 공소를 제기하여 피고인에게 그의 범죄행위에 합당한 형이 선고되도록 합니다.”라는 검사의 업무는 어떤가. 국민이 합의한 국가공권력을 위임받은 기관들의 역할과 의무는 이상에 불과한가. 수임료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변호사의 직업윤리는 논외다. 법조인들이 가진 도덕적 의무와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는 불행하다.
17년 넘게 검사로 일하다 변호사로 변신한 장혜영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다. 글쓴이 개인에 대한 관점과 태도는 매우 중요하지만 직업인으로서, 생활인으로서 개인은 영화에서 배역에 충실한 배우의 사생활을 들추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변호사 홍보용, 정치권에 줄을 대기용, 직업상 취득한 범죄 사례와 피해 사례를 각색한 책들과 거리가 먼 법조인의 글을 만나기 힘들다는 점에서 장혜영의 『사랑과 법』은 짧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대체로 검사 시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나 개별 사건과 사례를 중심으로 자기 경험에 지나치게 몰입한 직업인의 애환과 다른 측면이 눈에 띤다. 그것은 인간과 세상을 ‘사랑’과 ‘법’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카테고리로 엮는 관점 때문이다. 어떤 직업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든 결국 삶을 대하는 태도와 방법이 한 인간의 깊이와 넓이를 결정하고 각각의 인생을 규정한다고 믿는다.
이 책에는 일곱 편의 글이 실려 있다. 변사, 책임, 사기, 학대, 합의, 중독, 시효와 관련된 이야기를 ‘사랑’으로 엮었다. 물론 이 사랑은 파토스와 로고스 그리고 에토스의 세계를 넘나들며 죄와 벌을 묻고 인생의 길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대개 좋은 글들은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지 묻는다. 정답 없는 인생이니 좋은 글에는 이정표 대신 물음표와 질문만 넘친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과 『남아 있는 나날』을 소개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크지 않으나 단단하다. 시를 읽는 장혜영은 다양한 인문학적 소양을 자랑하지 않되 곳곳에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확보한 출처를 밝힌다. 그러면서 “사회를 구성하는 토대이자, 사람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 요건”을 사랑과 법이고 규정한다. 어느 하나를 결여한 사회가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니 부족한 건 무엇일까. 사랑이라면 누구를 위한, 어떤 방식의 사랑이 필요할까. 법이라면 입법 취지와 목적 그 시행 과정과 결과가 만족스러운가. 대한민국 법률 체계와 헌법 정신에는 큰 문제가 없다. 어느 분야나 그러하듯 시스템이 아니라 그 자리에 놓인 ‘사람’이 문제를 일으킨다. 법 위에 서려는 자는 범죄자 뿐만 아니라 법을 다루는 자를 포함한다. 사랑이 부족하거나 사랑을 외면하는 자가 저지르는 범죄와 같이.
저자의 능력주의meritocracy 비판이 신선하다. 생각의 균형추는 현실 정치의 이쪽을 넘나들며 이념 논리에 갇히지 않을 때 작동한다. 능력주의에 대한 문제는 이쪽과 저쪽의 문제가 아니다. 재앙에 가까운 저출생 문제부터 세금과 부동산과 주식 문제가 모두 양궁 대표선수 선발 시스템처럼 공정하고 투명할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을 쓰려는 시늉 정도는 하려는 세상이 돼야 하지 않을까.
독자로서, 변호사가 된 장혜영에게 기대하는 건 없다. 다만, 이 책에서 보여준 관점으로 의뢰인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또 다른 관점으로 살필 수 있다면 좋은 글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어느 자리에서 무엇을 바라보는지, 어디를 향해 어떤 태도를 갖는지에 따라 앞으로 나올 책을 기대하거나 실망하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