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소시오패스의 사정 앤드 앤솔러지
조예은 외 지음 / &(앤드)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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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가 촉발한 ‘무의식’에 대한 관심과 열정으로 현대인의 말과 행동은 ‘이해’와 ‘오해’를 넘어 ‘분석’과 ‘해석’의 대상으로 탈바꿈한 지 오래다. 타인은 지옥이라는 사르트르의 말이 속담처럼 인용되지만 근대가 탄생시킨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영역, 자유의 한계, 평등의 기준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대접받고 싶은 대로 타인을 대접하라는 금칙은 ‘타인’의 재산, 권력, 성별, 직업, 나이 등에 따라 달리 적용된다. 타인에 대한 이해는 불가능하며 타인은 오로지 오해의 대상이라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아도 우리는 항상 진상, 빌런, 벤(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과 함께 산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면 바로 당신이 ‘그’라는 경고는 모골이 송연하다. 흔히 그를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라 부른다.

둘의 차이는 정신분석학이나 의학적 관심의 대상이니 현실 혹은 소설의 캐릭터를 구별할 필요는 없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정도로 해석되는 소시오패스는 선천적이고 충동적이며 공격적인 사이코패스보다 덜 위험하지만 후천적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25명 중 하나, 전체 인구의 4%가 가정과 사회적 환경에 따라 소시오패스가 될 수 있다는 건 흥미로운 진단이며 심각한 현대인의 질병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혹은 이웃과 동호인 중에 반드시 ‘그’가 있다. 우리는 소시오패스와 함께 산다.

앤솔로지 『이웃집 소시오패스의 사정』에는 다섯 명의 소시오패스가 등장한다. 인터넷 게시판을 만들어 익명의 소시오패스를 소개하는 코너를 만들면 소설보다 흥미로운 사례가 넘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직업별로 살펴보면 정치인이 소시오패스 비율이 가장 높지 않을까. 사회면 뉴스에 소개되는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범죄자와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화제가 되는 소시오패스는 일일이 떠올리기도 어렵다. 오로지 제목에 이끌려 선택한 책 한 권을 읽는 동안 현실에서 만난, 간접적으로 경험한 실존 인물들이 떠올랐고, 그들에 비하면 소설 속 소시오패스들의 말과 행동은 애교 수준으로 느껴질 만큼 오히려 현실이 더 참담하다.

소설같은 현실을 외면할 수 없고, 개연성 없는 픽션은 취향과 거리가 멀어 SF나 장르 소설에 몰입하기 어려운 개인적 취향이 문제일까. 아니, 다이내믹한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다가올 미래가 소설보다 현기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 본다. 요즘 유행하는 MBTI는 인간을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4가지로 규정하는 혈액형보다 세분화한 듯 보이지만, 사실 E/I, S/N, T/F, J/P처럼 양자 택일에 가깝다. 문제 해결problem solving이 중요한 T 성향은 대개 남성, 정서적 지지emotional support가 우선인 F 성향은 여성들의 속성에 가깝다. 상황과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지만 일반적 성향은 비율이 큰 쪽을 선택하는 흑백 논리를 강요한다. 자연스럽게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의 비율이 높은 MBTI가 궁금해서 검색했다. 확률과 통계 그리고 편견은 어떤 식으로 작동할까.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확인하시길.

앤솔로지는 출판사와 작가에게 각각 장, 단점이 있다.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들이다. 독자 입장은 조금 다르다. 옴니버스 영화처럼 뷔페를 즐기는 독특한 매력이 있으나, 작품마다 차이가 심할 때는 불편함도 크다. 책임 분산 효과라고 하면 지나치겠으나 소설가의 역량이 확연히 구별된다. 영화나 드라마의 옥의 티처럼 세심하지 못한 실수가 아니라 상식에 벗어난 설명과 구성은 독자를 황당하게 한다. 특정 장면을 소개하고 싶지는 않다. 습작은 습작으로 끝내야 한다. 자꾸 고친다고 완성도가 높아지진 않는다.

반면 “설득보다 속이는 게 쉽고, 속이는 것보다 죽이는 게 더 편하다.”라는 클리셰 같은 문장을 훌륭하게 변주한 「없는 사람」처럼 구성과 내용이 모두 흥미로운 단편을 만난 즐거움을 놓칠 수는 없다. 다섯 편의 소설에는 소시오패스, 나르시시스트, 히키코모리, 경계선 인격장애, 리플리증후군, 사이코패스 등 다양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들은 우리 안에 있고, 우리는 또 그들의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게 아닌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흥미로운 사건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단편을 쓰는 건 어느 작가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장편보다 단편이 주는 재미를 찾는 독자도 많다. 앤솔로지 소설집이든 장편소설이든 유튜브와 짧은 영상이 범람하는 시대의 작가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작업일 듯싶다.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작가들에게 응원과 박수를 보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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