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론 - 어떻게 마주 앉아 대화할 것인가
최재천 지음 / 김영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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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統攝은 ‘consilience’의 번역어다. 그 의미를 포괄하지 못하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용어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고 원어 그대로 컨실리언스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번에는 ‘숙론熟論’을 들고 나온 최재천의 생각과 의도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토론discussion이든 논쟁debate이든 숙론discourse이든 새로운 용어와 개념을 내세워 이론을 정리하는 일보다 중요한 건 지속 가능한 방법론이나 실천적 담론이다. 마르크스의 철 지난 충고대로 ‘해석’에 그치는 책은 차고 넘친다. 이제 변화를 이끌거나 실행에 옮겨야 할 때가 아닌가.

무용담과 자서전은 일기장이나 유튜브로 충분하다. 최재천의 책을 서너 권쯤 읽고 나면 강릉 어린 시절부터 유학 시절까지 그의 삶을 얼추 꿸수 있다. 숙론의 실천담으로 소개하기에 어려운 일화들이 200여 쪽에 불과한 분량에 절반이 넘어도 좋을만큼 중요한 사례라고 볼 수도 없다. ‘최재천 교수가 9년간 집필해 마침내 완성한 역작’이라는 광고 문구의 부끄러움은 왜 내 독자의 몫이어야 하는가. 이 정도면 너무한 거 아닌가. 쓸 게 없으면 원고 청탁을 거절할 때도 됐다.

마주 앉아 대화하는 기술이 부족한 게 아니라 상대를 ‘인정’하는 태도를 배우지 못한 대한민국의 교육, 경쟁에서 이기도록 기른 부모들의 양육 방식, 세컨 챈스second chance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에서 토론이나 토의가 가당키나 한가. 사교육으로 결정되는 대학 진학, 불안정한 고용과 사회 안정망, 청년 실업과 주거 문제를 외면한 채 내놓은 저출생 대책만큼 교육 부재 만능주의는 철지난 유행가처럼 들린다. 원인의 원인, 즉 교육에는 왜 숙론이 불가능한가.

숙론의 필요성과 목적에 치중하나 방법론과 대안은 부재하고 개인적 경험에 기댄 화려한 무용담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진지한 성찰과 반성, 그리고 실천 가능한 정책 변화, 발상의 전환, 공동체의 태도 변화가 아닐까. 물론 이것이 모두 특정 집단과 개인의 탓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외면과 이기주의에 기인한다. 어쩌면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바뀌지 않는 것들에 대한 한숨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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