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알랭 드 보통 지음, 박중서 옮김 / 청미래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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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헤어질 때, 배려의 말을 건네는 쪽은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 37쪽

알랭 드 보통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Essays in Love, 1993년)로 깊은 인상을 남긴 후에도 결코 만만치 않는 책들이 계속 번역되었고 많이 읽혔다. 개인적으로는 『불안』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현대적 일상의 가치를 재해석했기 때문이다. 사랑에 관한 숱한 오해와 진실에 대해 어떤 작가든 한두 마디는 하기 마련이다. 프루스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보통씨는 특별한 문장을 남긴다.

건축, 미술, 종교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친 다양하고 풍부한 저작들은 평균 이상이다.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기 전 에피타이저 혹은 읽은 후에 디저트로 좋은 책이다. 1871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프루스트는 평생 변변한 직장을 가져 본 적도 없고 병약한 몸으로 거의 일생을 침대에 누어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문제적 작가다. 숱한 상찬과 논쟁으로 여전히 살아 숨 쉬는 프루스트는, 아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몇 마디로 규정하기도 어렵고 재미와 감동이라는 전통적인 문학적 잣대로 가늠하기도 어렵다.

텍스트 자체보다 프루스트에게 집중한 저자는 ‘오늘의 삶을 사랑하는 방법’, ‘성공적으로 고통받는 방법’, ‘사랑 안에서 행복을 얻는 방법’ 등 원제처럼 프루스트가 당신의 삶을 바꾸는 방법 아홉 가지를 제시한다. 책 좀 읽는 독자들은 금세 눈치챈다. 비법과 방법을 제시하는 책은 실패하기 쉽다는 것을. 그건 니 생각이고 난 달라,와 같은 주관적 태도와 생각 등 비판적 관점이 개입되기 때문이며 어디에나 통용되는 방법론은 수학의 정석에도 모두 담아내지 못한다. 정해진 길이 있다면 세상에 단 한 권의 책만 존재할 테니까. 그러니 이 책도 프루스트나 텍스트를 읽는 동안 진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헤매려는 사람은 기필코 이해하고 말겠다는 오기보다 보상 심리로 읽는 것이 좋을 듯하다.

프루스트에 삶과 당대 상황들에 대한 이해는 기본이다. 어떤 고전이든 ‘당대성’을 간과한 채 서사에 몰입하기는 어려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없던 시대고 겨우 전화가 발명된 시기다. 잘 차려 입고 오프라인 모임인 살롱에 가지 않으면 사람을 사귈 방법이 없었고, 인스타가 없어 돈 많은 사람들이 자랑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는 걸 기억하자. 그러면 오늘의 삶을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니, 프루스트가 자기 삶이나 사랑했는가. 친구도 없었을 것 같은데...질베르트, 알베르틴을 떠올려 보니 사랑이 뭔지도 모를 것 같은데...우리가 삶을 바꾸는 방법을 읽어낼 수 있다고?

그렇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독자’야말로 진정한 책을 완성시킨다. 무엇을 썼는지 중요하지 않다. 개별 독자가 어떻게 읽었는지가 핵심이다.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이 읽은 프루스트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일 뿐이다. 물론 우리는 타인의 책읽기를 통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비밀에 감탄하고 전혀 다른 해석에 놀란다. 독서 토론이 아니라도 간접적인, 또 다른 방식의 독서 모임 같은 2차 저작물들에 손이 가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프루스트 ‘보다’ 오히려 우리 입맛에 맞는 문장과 감수성을 가진 보통씨의 특별한 문장을 읽는 즐거움 때문이면 어떤가. 어차피 독서 유목민들은 짐을 챙겨 길을 떠나면 그뿐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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