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나를 끌고 당신에게로 간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600
시의 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지시인선 뒤표지 박스 안의 글이 좋아 서점에 가면 우선 시집을 뒤집어 먼저 읽어보고 내용을 살핀 적이 많다. 나만 그랬을까. 600권 기념호가 창비 500권 기념호와 비슷한 시기에 출간됐다. 이번에는 501~599권에 실린 시 모음 기념 시집이 아니다. 시인의 말, 아니 시의 말이라 명명한 뒤 표지 글을 모았다.

그동안 시는 나의 돛이자 덫이었다. 시가 부풀어 나를 설레게 했고 사해를 항해하게 했으며 닻 내릴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그리하여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글쓰기가 가능하도록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때로 시는 나를 괴롭혔다. 버리기 싫은 덫처럼 말이다.

_방부제가 썩는 나라┃최승호┃문학과지성 시인선 514「시작 노트」, 24쪽

한 편의 시는 시집 한 권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비교할 수 없다. 시 한 편은 소비하지만, 시집 한 권은 소화해야 한다. 그래서 시인들은 시작 노트 일부를 꺼내놓기도 했고, 시집을 출간하며 느낀 소회를 적기도 했으나 시인의 말이 따로 있으니 이 글들의 성격이 모호해졌나. 한 권의 시집에 모여 사는 시들이 내는 목소리라고 해도 좋다. 시의 말이든 시인의 말이든 행간을 건너 뛰어 미처 내뱉지 못한 한숨이어도 나쁘지 않았다. 허술한 푸념, 아니 단단하게 벼리지 못한 성긴 의미라서 머리보다 가슴에 닿았는 지도 모른다.

시의 목표가 사랑이 아니라면 그런 시는 내게 필요 없는 존재다. 왜냐면 세상은 보기보다 잔인하고 외롭고 힘들기 때문이다. 시는 삭막한 세상에서 상처 치유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_천사의 탄식┃마종기┃문학과지성 시인선 545, 58쪽

시가 삭막한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리라는 의사 시인 마종기의 생각은 나이브하다. 아니 시의 목표가 사랑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시를 쓸 수 없으리라. 알면서 펼치는 시집의 첫 페이지 그 숱한 서시를 읽기 위해, 그 두근거리는 ‘첫’을 위해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건 아닐까.

누구에게나 꿈이 있다. 남의 것과 비교할 수도, 비교해서도 안 되는 자기만의 꿈과 사랑은 제각기 다른 모양과 빛깔로 빛난다. 획일화된 세상, 자본주의적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을 무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를 읽지 않을 테다. 아니 무용해서 아름다운 걸 아는 사람들이 여전히 시를 쓰고 그 소중함에 기꺼이 읽는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닐까.

어떤 스무 살은 마흔 속에 가 있고

어떤 마흔은 스무 살 속에 와 있다.

_겨를의 미들┃황혜경┃문학과지성 시인선 568┃시 「핵核」에서, 85쪽

어쩌면 어떤 마흔 살은 예순 속에 가 있고, 어떤 예순은 마흔 살 속에 와 있다. 시간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 존재는 없다. 어떤 틈에 대하여 알고 싶다고 양자물리학의 원자와 핵 사이를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때때로 오늘 지는 해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과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는 사람도 많지 않다.

강동호는 발문에서 문지시인선 뒤 표지의 글들을 “하나의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글이면서 동시에, 일종의 음악적 코다(coda)처럼 시집의 종결을 고지하는 자기 지시적 텍스트”라고 규정한다. 일종의 종결사라는 의미일 텐데, 나는 미련과 아쉬움이거나 그다음 시집의 서시를 고민하는 글로 읽힌다. 마지막이 아니라 미리 온 처음이라고 생각한다. 시간 앞에 한 인간의 죽음이 역사의 종말을 의미하는 게 아니듯이. 개별적 존재로서 하나의 우주와 같은 한 사람의 소멸이 세상의 끝이 아니듯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