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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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음악가 마일스 킹턴Miles Kington은 이렇게 말했다. “지식은 토마토가 과일임을 아는 것이다. 지혜는 과일 샐러드에 토마토를 넣지 않는 것이다.” 지식은 안다. 지혜는 이해한다. - 6쪽

에릭 와이너는 「들어가는 말」에서 지식과 지혜의 차이를 설명하려 애쓴다. 정보와 지식을 개인이 암기하고 저장했던 노하우know-how 시대를 지나 노웨어know-where 시대에 접어든 지 오래다. 그러나 아날로그의 추억은 레트로 감성으로만 소비되는 게 아니라 실생활의 습관과 태도로 각인되어 사고방식과 일상생활을 지배하기도 한다. 디지털 세대에게 정보와 지식은 검색의 대상일 뿐이다. 숙련된 기술과 전문가의 권위를 인정받는 각종 자격증과 시험 제도는 인간의 어떤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남아있는 걸까. 인공지능과 chatGPT로 인한 변화와 기술 발달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인류 사회의 낡은 제도는 아닐까. 이제 인간의 능력은 무엇으로 그 차이를 구별할 수 있을까.

인터넷 알고리즘과 추천 영상에 갇힌 현대인의 일상은 시공을 초월한 듯 보이지만 거대한 그물에 포획된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미 정해진 길만 달리는 기차의 지루함은 안정성의 다른 이름이다. ‘일관성은 상상력 없는 자들의 마지막 피난처’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충고가 자주 떠오른다. 습관적 사고와 행동, 일상의 루틴, 기차 레일이 모두 상상력의 부재를 증명하는 게 아닌가. 과거에 비해 상상할 수 없는 지식과 정보를 양산하고 활용하며 속도전을 치르는 인류의 삶은 조금 더 나아졌을까.

철학은 때때로 앎이 아니라 이해와 통찰의 중요성을 확인시켜 준다. 안다는 착각만큼 위험한 생각도 드물다. 내가 너를 안다, 그 사건은 내가 좀 안다, 그걸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소크라테스는 문답법을 통해 무지를 깨닫게 했다는데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의심과 질문을 이어가고 있는가. 지식과 정보를 찾아서가 아니라 지혜를 찾아 떠다는 저자의 기차여행은 따분하고 지루하다. 분명한 해답, 확실한 깨달음, 차별화된 비법을 전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14명의 철학자를 찾아 떠나는 긴 여정에 동행한 독자들은 각자의 삶을 ‘성찰’하지 않았을까. 기억과 회고만큼 부정확하고 주관적인 사유 방식은 없다. 이것이 때로는 마르셸 프루스트처럼 거대한 문학적 성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자기만의 생각의 방에 갇히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어차피 객관적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믿는 모든 사실fact은 자기 합리화 과정일지도 모른다. 수학에 바탕을 둔 과학적 세계관으로 무장해도 우리는 길을 잃고 헤맨다. 루소처럼 걷는 법을 배우고, 간디처럼 싸우는 법을 익히며, 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법을 터득해도 모든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후회와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어제는 돌아오지 않고 내일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촉촉하게 내리는 봄비가 그치면 벚꽃이 필 테다. 소크라테스를 소환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할까. 자기 삶의 목적지가 아니라 방향과 태도를 점검하는 일은 실천과 행동으로 확인할 뿐이다. 어쩌면 에릭 와이너는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동안 철학자들을 소환한 게 아니라 함께 여행하는 딸 소냐에게 건네는 사랑과 응원의 당부가 아니었을까. 아주 조금 먼저 살아본 자들의 경험적 꼰대론이 아니라 같이 고민하고 각자의 길을 찾으려는 과정이 소중해 보인다. 길을 잃어도 괜찬다,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다. 다만, 작은 변화와 새로운 도전이 없는 지루한 삶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가끔은 에피쿠로스나 시시포스의 조언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스마트워치와 퇴직연금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환상, 삶이 유의미하다는 환상을 준다. 우리는 방금 태운 칼로리와 모아둔 돈을 들여다보며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삶은 유의미해. 내 손목 위의 작은 스크린 속에서 의미가 환하게 빛나고 있는 게 보여. 하지만 스마트워치를 찬 시시포스의 삶은 스마트워치 없는 시시포스의 삶과 똑같이 부조리하다. - 4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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