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프루스트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만이 있다.” - 앙드레 모루아

“한 인간의 삶을 가장 완벽하게 재현했다.” - 알랭 드 보통

세상에 필독서는 없습니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어떤 사람이든 현재 내 삶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책보다 사람과 세상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틀린 건 아닙니다. 다만 아래 소개 글은 죽기 전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어 보려고 시작하시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까 싶어 며칠 먼저 읽은 사람이 남기는 흔적입니다. 매우 주관적인 생각과 판단일 수 있으니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1. 번역본 선택과 워밍업

마르셀 프루스트에 관한 찬사와 관심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합니다. 2022년 11월에 민음사에서 완간된 13권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추천합니다. 번역은 제2의 창작입니다. 특히 문학은 번역가의 역량과 출판사의 투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와 감동을 선물합니다. 문학동네, 창비, 민음사 등 대형 출판사가 독점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서 세계 문학 번역본은 반드시 한두 쪽이라도 비교해 보고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번역가의 역량에 따라 전혀 다른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작가의 집필 기간에 버금가는 시간을 투자한 김희영의 노고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한 마음을 전할 뿐입니다.

이미 번역 출간된 국일미디어, 동서문화사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1권을 읽다가 열화당에서 나온 만화로 먼저 스토리를 파악하고 워밍업을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고전을 읽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2차 저작물을 통해 사전 정보를 얻고 전문가의 견해와 배경 지식을 토대로 접근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습니다. 아래 프루스트와 ‘잃시찾’ 관련 도서를 적어 두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결국 문학은 개별독자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줍니다. 누가 뭐라든 내가 읽은 나만의 ‘잃시찾’을 만들게 됩니다.

2. ‘잃시찾’ 효과

단 한 권의 책을 쓴 유일한 작가라는 평가는 이 책에 아우라를 부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기억과 시간에 관한 집착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추억합니다. 프루스트는 도대체 어떤 생각과 감정을 떠올리며 10여 년간 글쓰기에 매달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장은 길고 묘사는 치밀합니다. 한 단락이 수십 쪽에 이르기도 하니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라는 심리학 개념은 문학과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자동기술법automatisme으로 발전합니다. 문학이론과 평가는 이 책을 읽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100년 전 프랑스의 금수저 귀족 집안에 태어나 무직으로 글만 쓰며 살던 프루스트가 바라본 세기말의 풍경과 사교계 인물들, 자기 경험에 대한 미치토록 지루한 TMI를 견디다보면 어느새 프루스트식 글쓰기에 매료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다른 모든 책이 쉬워지는 ‘잃시찾’ 효과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유명한 홍차에 적신 마들렌은 1권 도입부에 등장합니다. 피에르 바야르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1편 「스완네 집 쪽으로」(1~2권)만 읽으셔도 마들렌 효과(비의지적 기억을 통한 과거의 부활과 총체적인 인식)에 대해 대화를 나누거나 글을 쓰는데 불편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과 알베르틴 효과(일시적이고 단편적인 것, 늙음과 죽음, 욕망과 질투, 광기와 환상, 무의식과 타자)까지 살펴보시려면 완독을 추천합니다.

만연체 문장의 힘은 대단합니다. 세상을 0.5배속으로 보게 합니다. 슬로우 모션으로 돌아가는 영화처럼 프루스트는 끊임없이 중고등학교 때 애용하던 카세트 플레이어의 되감기rewind 버튼을 누릅니다. 속으로 ‘제발 그만 하라고!’라고 외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서사story 중심의 현대 소설과 전혀 다른 전개 방식에 지쳐갈 쯤 독특한 구성과 차별화를 경험하신다면 프루스트에게 감염되신 겁니다.

13권을 읽는 동안 수많은 등장인물이 독자를 괴롭힙니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 러시아 소설을 읽을 때 등장인물 이름을 읽다가 덮어버리신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등장인물 뿐만 아니라 당대를 풍미했던 음악가, 화가들의 작품까지 살펴야 하는 매우 번거로운 각주 읽기가 되거나 의외의 재미이거나! 드레퓌스 사건은 시종일관 사회적 배경으로 소모되기 때문에 사회, 역사적 배경까지 공부하며 읽을 필요는 없지만 드레퓌스 사건과 제1차 세계대전에 관한 정보는 간단하게 찾아보시면 좋습니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인물과 사교계의 복잡한 혼인 관계 등은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려집니다. 1편~7편이 시작될 때 등장인물을 미리 소개합니다. PDF 파일로 만들어 두고 출력해서 참고하시거나 핸드폰에 사진으로 저장하고 헷갈릴 때마다 수시로 확인하면 금방 떠올려집니다. 아래 첨부해뒀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드레퓌스 사건, 유대인 차별, 전통 귀족, 신흥 부르주아, 살롱 문화 등 당대 사회를 이해하는 기본적인 정보와 지식이 필요할 수도 있으나 프루스트의 설명만 따라가며 그땐 그랬구나, 정도만 이해하고 넘어가도 소설을 읽는 데 큰 지장은 없습니다. 이 소설을 읽는 목적이 어디에 있든 각자의 방식대로 읽으시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3. 쓸데없을 수도 있는 몇 가지 안내

1권 50쪽 쯤 읽다가 전체 분량이 13권이라는 사실에 현타가 오시면 각 편 뒤쪽 김희경의 해설을 먼저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매일 일정 분량을 정해 놓고 읽는 방법도 좋지만 저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만 읽기를 권합니다. 최선을 다해 천천히 문장과 문제를 즐기려면 프루스트식 글쓰기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집중력 높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벨 에포크 시대 프랑스와 유럽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알베르 소불의 『프랑스 혁명사』를 읽고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2012》 등을 찾아보셔도 좋습니다.

스완과 오데트의 딸 질베르트는 화자인 마르셀 프루스트의 첫사랑입니다. 스완 양이었던 질베르트는 스완 사망 후 오데트의 재혼으로 포르슈빌 양이 되고 생루와 결혼해서 생루 후작 부인이 되었다가 생루 사망 후 게르망트 공작 부인이 됩니다. 인물들의 호칭과 관계 변화가 다양하진 않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사망, 결혼 등 주요 사건을 놓치는 순간 회상과 미친 TMI에 길을 잃기 쉽습니다. 가급적 주요 등장 인물은 메모를 하며 읽기를 권합니다.

최초 구성은 1편 「스완네 집 쪽으로」, 3편 「게르망트 쪽」, 7편 「되찾은 시간」 3부작이었다네요. 나머지 2, 4, 5, 6은 알베르틴이 주연을 맡습니다. 물론 사교계 이야기와 다른 등장인물도 중요하지만 인과관계와 사망 시점 등이 마지막 편에 헷갈리기도 합니다. 1, 3, 7편을 먼저 읽고 2, 4, 5, 6편을 읽는 방법도 괜찮아 보입니다. 7편이 각각 다른 소설로 완결될 수 있으니 전체 구성을 이해하고 공간적 배경과 이동 경로를 감안해서 읽으시면 ‘시간’ 순서대로 ‘추억’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프루스트의 ‘기억’과의 싸움의 최전방에 참전하는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전체 구성과 읽으면서 주요 등장인물과 사건을 메모하기 시작한 건 3권부터입니다. 혹시 참고가 될까 싶어 아래 첨부합니다.

소설은 계속해서 살롱 문화를 따라 갑니다. 사교계를 떠나지 않았던 작가의 삶은 관계를 맺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모두 살롱에서 배웠을 거라 짐작합니다. 타자를 향한 열정과 의심과 질투와 집착을 현대인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당대의 문화와 전통과 전혀 다른 21세기 한국인이 마르셀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필요없어 보입니다. 다른 소설과 달리 특정 인물에 감정을 이입하거나 공감을 목표로 한다면 잃시찾 읽기는 지루한 자기와의 싸움일 될 뿐입니다.

소설에서 각주 읽기는 당황스런 경험입니다. 김희영의 각주는 프루스트 연구자들의 주장을 소개하고 사실관계를 설명하며 내용의 모순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각주를 건너뛰면 내용을 깊이 이해하고 프루스트의 의도를 놓칠 수도 있으나, 선택은 독자의 몫입니다. 각주 읽기가 소설 읽기를 방해한다면 주객이 전도되지 않는 선에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각주를 읽으며 음악, 미술, 오페라 등 당대 예술가들의 대표작과 특징을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4. 사족

조정래의 『태백산맥』(전10권), 『아리랑』(전12권)이나 이문열의 『삼국지』(전 10권) 혹은 앙투안 갈랑이 엮은 『천일야화』(전 6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전 5권) 등 연작 소설을 읽은 경험을 떠올리며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가 당황했습니다. 각자의 소설 읽는 방식이 있겠으나 저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조금 색다른 독서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긴 사족을 덧붙입니다. 소설을 읽는 목적과 방법, 책을 읽는 이유에 따라 각자의 접근 방식을 선택하면 그뿐입니다. 물론 안 읽어도 그만입니다. 그래도 혹시 시작하신다면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민음사 1~13권 5,716쪽)

1편 「스완네 집 쪽으로」 : 콩브레

1부 콩브레(민음사 1권, 324쪽)

2부 스완의 사랑(민음사 2권, 432쪽) : 스완-오데트

3부 고장의 이름-이름

2편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 상젤리제, 발베크

1부 스완 부인의 주변(민음사 3권, 376쪽) : 샹젤리제_베르고트, 질베르트(스완 양 → 포르슈빌 양 → 생루 후작 부인 → 게르망트 공작 부인)

2부 고장의 이름-고장(민음사 4권, 556쪽) : 발베크_엘스티르(마네), 알베르틴, 앙드레

3편 「게르망트 쪽」 : 콩브레, 동시에르, 빌파리지 부인의 오후 모임 vs 게르망트 부인의 만찬

1부(민음사 5권, 524쪽) : 동시에르_빌파리지 부인, 생루(로베르)-라셸, 샤를뤼스

2부(민음사 6권, 544쪽) : 게르망트_할머니의 죽음, 게르망트 부인, 알베르틴, 스테르마리아, 스완,

4편 「소돔과 고모라」 : 발베크, 동시에르, 게르망트 대공부인 저택 연회 VS 베르뒤랭 부인 집에서의 만찬

1부(민음사 7권, 448쪽) : 샤를뤼스-쥐피앵, 스완, 알베르틴

2부 1장 : 발베크_알베르틴, 앙드레, 캉브르메르 부인,

2장(민음사 8권, 540쪽) : 동시에르, 발베크_알베르틴, 생루,

3장 : 샤를뤼스 남작-모렐, 게르망트 대공-모렐,

4장 : 뱅퇴유 딸-알베르틴, 베르뒤랭 부인, 캉브르메르 후작 부인

5편 「갇힌 여인」 : 파리 샹젤리제

1부(민음사 9권, 328쪽) : 마르셀-알베르틴, 샤를뤼스, 모렐-쥐피앵 조카딸, 베르고트의 죽음,

2부(민음사 10권, 424쪽) : 스완의 죽음, 베르뒤랭 살롱, 샤를뤼스-모렐, 뱅퇴유 양의 친구-알베르틴, 뱅퇴유의 사후 연주회, 알베르틴과 이별

6편 「사라진 알베르틴」 (민음사 11권, 516쪽) : 투렌, 불로뉴 숲으로의 외출 → 질베르트 만남 → 앙드레와의 대화 → 베네치아에서의 체류

1장 : 알베르틴의 죽음, 생루, 에메의 조사와 편지, 에포르슈빌,

2장 : 포르슈빌(질베르트), 알베르틴의 진실(에메의 조사와 편지/앙드레의 방문/베네치아에서 가르파초의 그림)

3장 : 베네치아_노프루아, 빌파리지 부인, 빌파리지 부인의 조카이자 마르상트 부인의 아들 생루-스완의 딸 질베르트 결혼 소식

4장 : 캉브르메르 아들-쥐피앵의 조카딸과 결혼 소식, 생루의 동성애 성향과 질베르트에 관한 회상, 노르푸아-빌파리지

7편 「되찾은 시간」 : 파리, 콩브레, 탕송빌, 블로뉴숲 가로수길

되찾은 시간 1(민음사 12권, 312쪽) : 파리, 로베르-질베르트, 쿠르부아지에, 모렐, 콩쿠르, 제1차 세계대전, 베르뒤랭 살롱, 샤를뤼스, 브리쇼, 쥐피앵, 생루의 죽음

되찾은 시간 2(민음사 13권, 392쪽) : 게르망트 대공부인 살롱, 레투르빌 소위, 블로크, 샤를뤼스, 질베르트, 라셸, 라 베르마

# 주요 무대 : 콩브레, 샹젤리제, 발베크, 동시에르, 베테치아, 포부르생제르맹, 메제글리즈, 투렌, 탕송빌, 루생빌

- 콩브레 : 마르셀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곳

- 샹젤리제 : 어린 마르셀이 놀던 곳

- 발베크 : 마르셀이 여름 방학을 보낸 바닷가

- 동시에르 : 친구인 생루가 군대 생활을 했던 곳

- 베네치아 : 마르셀이 어머니와 함께 여행 갔던 곳

# 주요 인물 : 화자(마르셀), 스완, 오데트, 질베르트, 베르고트, 엘스티르, 알베르틴, 앙드레, 봉탕 부인, 노르푸아 후작, 게르망트 공작 부인, 베르뒤랭 부인, 포르슈빌 백작, 빌파리지 후작 부인, 르그랑댕, 캉브르메르 후작 부인, 뱅퇴유, 샤를뤼스 남작, 모렐(샤를리), 쥐피앵, 마르상트 백작 부인, 생루(로베르), 라셸, 블로크,

# 키워드 : 시간, 기억, 추억, 사랑, 죽음, 동성애, 살롱 문화, 전통 귀족, 신흥 부르주아, 드레퓌스 사건, 벨 에포크

# 관련도서

-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알랭 드 보통, 박중서 역, 청미래, 2023

- 프루스트 그래픽, 니콜라 라고뉴, 정재곤 역, 니콜라 보주앙 그래픽, 민음사, 2022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되찾은 시간 그리고 작가의 길, 오선민, 북드라망, 2021

- 프루스트를 읽다, 정명환, 현대문학, 2021

-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앙투안 콩파뇽, 장 이브 타디에 외, 길혜연 역, 책세상, 2017

- 프루스트와 지드에서의 사랑이라는 환상, 이성복, 문학과지성사, 2015

- 마르셀 프루스트 : 독서에 관하여, 마르셀 프루스트, 유예진 역, 은행나무, 2014

- 프루스트의 화가들, 유예진, 현암사, 2010

- 프루스트와 기호들, 질 들뢰즈, 이충민 역, 민음사, 20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