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신이라는 착각 - 확신에 찬 헛소리들과 그 이유에 대하여
필리프 슈테르처 지음, 유영미 옮김 / 김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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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진실성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안다면 말과 행동을 삼가게 된다. 그러다 대부분의 사람은 신념과 확신으로 가득하다. 타인을 단순하게 나쁜 사람으로 규정하며 자신은 복잡하고 신중한 사람으로 착각한다. 모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며 생존 게임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한다. 진화의 관점에서 인간의 불합리한 요소도 버릴 게 별로 없다. 이질적 존재에 대한 경계와 편견, 나와 다른 집단에 대한 적개심은 종족 보존과 항상성 유지에 도움이 된다. 끼리끼리의 카르텔은 깨지지 않을 것이며 그들만의 리그는 계속되리라.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신경과학자이자 정신의학자인 필리프 슈테르처가 쓴 이 책은 과학의 영역조차 음모론이 난무하는 현실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망상, 조현병조차 적응과 생존에 유리한 점이 있다는 점이 놀랍지만 ‘정상’과 ‘비정상’, ‘미친’과 ‘제정신’ 사이에는 경계가 없고 연속선 위에 놓여 있다는 지적은 새삼스럽지 않다. 언제나 경계 위에서 흔들리는 사람, 고민하고 질문하는 사람은 성장과 변화의 희망을 품어도 좋다. 그러나 현실은 모두, 각자 ‘제정신’인 사람뿐이다. 반대편 사람들, 즉 정치적 신념, 종교 등이 다르면 공생이 불가능한 적으로 간주한다. 몇몇 극단주의자의 태도가 아니라 나와 다른 생각과 취향을 가진 타인을 비난하는 모든 사람이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는 왜 타인을 인정하기 어려울까. 아니, 어느 지점까지 허용할 수 있으며 협력과 공존이 가능할까.

짐 알칼릴리는 『과학의 기쁨』에서 “확신이 몰락을 불러온다.”고 지적했고, 저자는 이 책에서 “확신은 본질상 가설에 불과하다.”라고 강조한다. 의심하고 질문하는 태도가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장착될 가능성은 없을까. 생존 기계에 불과한 인간의 유전적 본성에 반하는 데도 인간은 왜 스스로 합리적, 이성적 존재로 ‘착각’할까. ‘확신에 찬 헛소리들과 그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느라 하루 해가 짧다. 근대 이후 과학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이성과 합리성은 인간을 다른 존재와 구별하는 결정적 요소가 되었으나 개인은 모두 ‘제정신이라는 착각’에 빠져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합리성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비합리성이 진화한 이유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과학이라는 시스템은 인식적 합리성 원칙을 표방한다. ‘인식적 합리성’은 확신이 증거에 부합해야 하며, 이런 부합성에 맞춰 확신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실용적 합리성’은 어떤 확신이 자신에게 실용적 이익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마치 탈진실post-truth,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처럼 실용적 합리성은 뇌피셜과 합리화의 다른 이름일까. 비합리적 확신은 종교와 미신 그리고 음모론의 바탕을 이룬다. 미스터 스포크는 “나는 훈련 없는 지성에 반대한다.”고 선언했으나 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인식적 비합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러한 ‘인지 왜곡’을 인지 편향 또는 인지 착각이라고 부른다. 이는 우리의 생각이 체계적으로 실수를 저지른다는 의미다.

대표적으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을 들 수 있다. 오직 모를 뿐!이라는 겸손은 옛말이 되었고, 인터넷 시대의 인류는 스스로 전문가가 되어 자신의 판단과 선택에 점차 확신을 갖게 된다. “우리의 인간적인 확증 편향이 인터넷에서 에코 체임버가 생겨나게 할 뿐 아니라, 에코 체임버가 확증 편향을 부추기는 것이다.” 필터 버블Filter Bubble과 체리 피킹cherry picking은 에코 체임버echo chamber로 확신을 신념으로 강화한다. 대니얼 카너먼이 말한 ‘네게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다What You See is All There is’라는 무서운 팩트fact와 진실truth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는 절대 네비게이션을 창작한 신인류가 등장한 건 아닐까.

‘예측 처리 이론’을 소개하며 왜 우리가 대체로 인식적 비합리성을 벗어나지 못하는지, 심지어 망상과 조현병조차 적응과 생존의 방편이 될 수 있는지 살피는 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그’ 혹은 ‘그들’의 생각과 태도를 이해할 수도 있다. 그들은 인간일 뿐 로직logic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나 로봇이 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하는 과정은 곧 나의 착각과 확신을 점검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인간은 예측 기계라는 저자의 주장은 인간이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는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에 포섭된다. 의심과 질문은 겸손한 태도를 만든다. 공부하고 살피며 매일 조금씩 조정하고 수정하며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삶은 불가능할까. 목청 높여 노래 부르던 가수의 외침이 새삼스럽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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